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주도하다, 노도철 동문 (영상대학원 10)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11.11 09:24:56
조회 1,865



 


       

     


▲ 제작사에서 만난 노도철 동문 (영상대학원 10)


최근 들어 지상파 드라마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뻔한 소재에서 벗어나 신선한 주제와 새로운 형식으로 탈바꿈 중인 한국 드라마들은 다시금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노도철 동문은 1996년 MBC에 입사하여 <두근두근 체인지>, <안녕, 프란체스카>, <우리들의 해피엔딩>, <군주-가면의 주인>, <검법남녀 1, 2> 등을 연출한 PD이다. 최근 검법남녀 2를 마치고 계속해서 드라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시즌 3를 준비하고 있는 노도철 동문을 서강가젯이 만나보았다.



MBC에 처음 입사하셔서 예능 PD로 계시다가 드라마 PD로 전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경복궁 옆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가 우연히 Voisin(프랑스어로 ‘친구의 목소리’라는 뜻)이라는 원어 연극을 하는 오래된 연합 서클을 알게 되었어요. 관심을 갖게 되어서 연기자로 서게 되었는데 그때 해본 배우 경험이 너무 좋아서 2학년 때는 서클의 회장도 하면서 기획도 했었죠. 서울대 학부 시절에는 원어 연극 서클을 만들어서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과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이라는 작품을 했습니다. 당시 ‘더러운 손’은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술집 스테이지를 빌려서 공연했는데 교수님들도 굉장히 좋아하셨고 반응이 좋았습니다. 대학 생활 내내 연극을 만들었죠. 희곡을 읽고, 무대 스테이지를 연출하고, 직접 연기도 하고 그런 작업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불문과 대학원에 가서 연극 연출을 더 공부할지 드라마 연출을 할지 고민하다가 둘 다 동시에 준비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언론사 시험에 합격해서 MBC에 1996년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 입사하면 OJT라고 드라마, 교양, 예능 현장에서 일주일씩 경험해보고 자신이 일하고자 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드라마 연출을 하려고 드라마 현장에 갔는데 하필 사극 촬영 현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산속에서 촬영을 했는데 아무도 신입 PD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드라마 촬영 현장이 너무 전투적이어서 신입에게는 신경도 쓸 겨를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힘든 일주일을 보내고 예능 현장에 왔는데 마침 당대 쟁쟁한 선배들이 계셨어요. 주철환 선배님, 송창의 선배님 등이 계셨는데 그때 주철환 선배님이 저희 신입 PD들을 담당하셔서 선배님과 동기들과 함께 매일 노래방에 다녀오고 음주 가무를 즐겼습니다. (웃음) 원래 성격이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사극 현장에서 너무 겁을 먹었던 탓에 재미있는 예능이 낫겠다 싶어서 예능 PD가 되었고 10년간 예능국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제 관심분야가 원래 연극, 드라마 쪽이어서 그랬는지 예능 분야에 와서도 계속 코미디, 드라마를 많이 했었습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느낌표>라는 프로그램도 했었고 <두근두근 체인지>, <안녕, 프란체스카> 그리고 <소울메이트>라는 시트콤 3편을 연출했었는데 최초로 <소울메이트>라는 시트콤에서 웃음 요소를 빼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트콤과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그걸 계기로 드라마국으로 전과를 했었어요.

 


드라마 PD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드라마에서 PD의 손길이 닿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합니다.


상황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보통 드라마는 PD가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작가가 캐릭터나 대사 등 대부분을 구상하는데 작가의 경험이나 연차에 따라서, 혹은 드라마의 장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편입니다. 신입 작가의 경우는 연출이 많이 개입해서 캐릭터나 방향성을 제시하고 중견 이상의 작가의 경우에는 주도권을 많이 행사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장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하는 ‘멜로’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는 작가 한 분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끌고 가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범죄물 같은 경우는 작가 한 분이 총괄하시기엔 디테일이나 캐릭터가 너무 많고 복잡해요. 그래서 파트를 나눠서 작가 여러 명이 나눠서 담당하죠. 이를테면 변호사 담당 작가, 검사 담당 작가, 그리고 법의관 담당 작가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여러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내면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그걸 끌어모아서 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죠. 그런데 저는 드라마에 앞서 시트콤을 먼저 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주로 하는 여러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하여 방향성을 통일해가는 멀티 작가 시스템에 좀 더 익숙해져 있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시즌물인 검법남녀도 그런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고요.

 

사실 PD는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합쳐진 것으로 일본이나 중국, 미국에서는 프로듀싱과 디렉팅을 분리해서 해요. 디렉터는 앞에서 컷을 넘기고 배우들의 동선을 짜는 정도만 하는 반면 프로듀서는 촬영장 뒤편에서 전체적인 방향성이나 연기 톤을 잡는 사람이에요. 우리나라는 아직 두 역할이 혼재되어 있어서 신인 작가의 경우에는 연출자가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합쳐서 하고 작가가 기획자의 수준 이상이면 연출자가 디렉팅만 주로 하는 편입니다.



‘크리에이터’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것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크리에이터는 말 그대로 새로 기획해내는 사람입니다. 미국은 드라마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제작자들이 아무리 드라마의 인기가 좋아도 한 시즌으로 끝나버리면 제작하는데 들어간 자본을 회수하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계속해서 시즌 1, 2, 3 이런 식으로 시즌물을 만들고 있어요. 파일럿을 먼저 론칭해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시즌물로 계속해서 제작하는 거죠. 이런 방식이 오래전부터 발달해왔는데 크리에이터는 파일럿이라고 한두 작품을 제작해서 그 속에서 독창적인 캐릭터와 포맷을 보여주고 반응이 오면 그때부터 작가들을 모아 시즌물을 만들어내고, 전체를 조망하며 시즌을 계속해서 끌고 나가는 역할을 해요.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끌기 위해선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가들을 많이 모으는데 모든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작가보다 기획자가 좀 더 권한을 갖고 방향성을 잡아서 이끌어가게 됩니다.

 


드라마는 특히 연출자만의 색깔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장르라고 생각이 됩니다. 드라마에 담아내고자 하는 동문님만의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똑같은 대본을 갖고 찍어도 작가, 연출자, 촬영하는 사람에 따라 드라마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게 드라마의 재미있는 점이죠. 저는 PD는 대본 읽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문자 텍스트를 영상 언어로 바꾸는 사람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요. 대본을 여러 번 읽어보면 대사 한 줄, 한 씬 모두 의미가 있어요.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연출자가 어떻게 해석할지, 배우가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대본에 나와있지 않아서 해석하기 나름이거든요.

 

저는 매 씬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머 코드가 꼭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못 참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작품들은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할까요, 농밀한 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도 재미없는 부분은 대충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은 천천히 읽잖아요. 심지어 천천히 읽고서 넘어갔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또 읽고요. 마찬가지로 영상도 첫 씬부터 마지막 씬까지 같은 템포로 진행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연출자가 보기에 재미없는 부분은 금방 넘어가고 재미있는 부분은 초고속 슬로우 비디오로 천천히 보여주면서 음악도 넣고, 최대한 힘을 주는 거죠.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라면 ‘플래시백’이라고 해서 다시 보여주기도 하고요.

 

제가 만들었던 드라마들이 시간대가 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았던 적이 없었어요. 한 씬 한 씬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공을 들여 재미있게 만들면 그렇게 만들어진 씬들이 모여 만들어진 드라마는 시청자분들에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제작하셨는데 그 중 특별히 애착이 남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든 작품이 제 자식 같습니다. 작품 하나하나 다 공을 들이기도 했고 작품마다 사연도 많아요. <안녕, 프란체스카>를 찍을 때는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왜 공중파에서 해야 하냐는 지탄도 많이 받았어요. <소울메이트>를 찍을 때는 예능국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마지막 회를 일본에서 촬영해야 하는데 해외출장 허락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일본 대사관 앞에 찍어오라고 하셔서 배우랑 매니저, 그리고 저 세 명이 몰래 주말에 신주쿠에 가서 찍어오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만큼 편하게 찍은 작품이 없었어요.

 

굳이 꼽아보자면 지금 하고 있는 <검법남녀>가 가장 애착이 남는 것 같습니다. 다른 연출 분들과 비교해보면 특이한 점이 저는 MBC에서 나온 모든 장르와 유형의 드라마를 다 해봤다는 거예요. 시트콤, 의학드라마, 사극, 일일극, 주말극, 그리고 이제 시즌물까지. 심지어 예능에서 드라마로 옮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두 농축되어 나오는 드라마라서 가장 애착이 남아요. 또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정착되지 않았는데 배우분들이 자기 캐릭터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해서 계속 같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중간에 한 두 명이라도 안 한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좋아해 주고 협조해줘서 시즌 1, 2, 3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운 일이죠.

 


오늘날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다양한 영상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공중파 드라마를 제작하는 PD의 입장에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는지, 어떤 시도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만하더라도 넷플릭스를 사용해봤는데 다른 건 안 보게 되더라고요. 광고도 없고 한 번에 몰아볼 수 있다는 점이 시청 패턴 면에서 큰 강점을 갖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중파에 형성되어 있던 광고 시장이 이제는 OTT(Over-The-Top, 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 시장으로 다 넘어가버린 상황이에요. 그래서 공중파의 큰 위기가 왔고 또 넷플릭스 외에도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애플티비 등의 OTT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할 예정이라 드라마 시장이 크게 요동칠 겁니다. MBC에서 23년을 있었지만 21년 차까지만 해도 변화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불과 1, 2년 사이에 상황이 바뀌더라고요. 종편 채널들이 새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경쟁이 됐었는데 이제는 종편마저도 OTT에 밀리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항상 위기는 기회라고 하죠. 오히려 젊은 감독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상황 때문에 드라마가 많이 바뀌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작가 한 명이 쓰고, 그 작가님을 영입하는 데에 주력하고,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나오는 막장드라마를 해 왔다면 이제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저희 때와는 다르게 어릴 때부터 영상 매체나 언어에 익숙해서 색다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이제 다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여건도 갖춰지고 있고요. 연출자가 좀 더 자신만의 것을 기획해낼 수 있는 기회는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출해보고 싶은 드라마 장르나 형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금 당장은 <검법남녀>가 공중파 시즌제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5, 6까지 가서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시즌물이 정말 어려운 게 기존 캐릭터를 유지하고 사건만 추가하면 계속해서 시즌을 늘려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가장 두렵고 어려운 게 항상 그전 시즌을 능가해야 한다는 거죠. 시청자들은 비슷하면 지루해서 안 봐요. 마블이 비슷한 듯하면서 늘 새로운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것처럼 시즌 3의 가장 큰 고민도 시즌 2와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 어떻게 능가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에요. 부담도 되고요.

 

그 다음엔 시트콤도 시즌제로 해 보고 싶고 <안녕, 프란체스카> 리메이크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급하게 만들었던 것도 있었고 아이디어에도 한계가 있었어요. 예능 출신 드라마 PD라는 제 장점을 살려 코믹한 요소는 살리고 속도감도 있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물이나 시즌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공중파에서는 드라마 PD 신입 공채가 줄고 있어요. 3사 전반적으로 공채를 통해 선발하고 양성하는 것에 회의적이에요. 그래서 요즘에는 경력직으로 거의 선발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예 제작사에 아웃소싱을 하기도 하고요. 영상에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나 1인 미디어 등을 통해 프로덕션 경험을 쌓아서 경력직으로 들어오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감독들의 경우에는 다른 특정 분야에 계시다가 오신 PD들도 많아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CG 출신이고 액션 무술 감독이나 촬영 등 다른 분야에서 PD로 옮기면 차별성이 생겨서인지 비교적 수월하더라고요. 그래도 드라마 PD는 계속 필요하니까 경험과 강점을 쌓아 도전해보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는 드라마는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수많은 노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작가들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연출자가 드라마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을 지휘함으로써 비로소 한 장면이 탄생한다. 어떤 한 장면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의미를 찾아 시청자들이 웃고 몰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노도철 동문의 향후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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