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을 되찾다,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1.05.25 13:22:47
조회 1,481



  

 지금껏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강제노동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이자 멈춰진 과거였다. 그러나 전시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는 노동자 개개인의 일상적인 기록에서부터 출발한다.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장소, 노동의 현장,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묘비에 새겨진 이름. 전시의 모든 사료와 작품, 그리고 공간은 그들이 거대한 역사의 조각이 아니라, 각자의 역사를 지닌 주체임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서강가젯이 본 전시의 총괄과 기획을 맡은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의 이용우 교수를 만나 전시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꿈꾸다,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안녕하세요, 교수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0년 3월부터 서강대학교에 재직 중인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이자 미디어 역사문화학자, 이용우입니다. 현재 비판적 미디어 문화, 시각 이론과 동아시아 소리 및 영상문화, 한국 현대 미술, 후식민적 역사서술 방식과 번역 등에 관한 연구 및 강의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2017)’를 공동 기획했고, 중국 안렌 비엔날래와 홍콩 파라사이트 ‘흙과 돌, 영혼과 노래(2016-2018)’, ‘로버트 메이플소프: More Life(2021, 국제갤러리)’의 큐레이터로 참여했습니다.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이하 CGSI) 홈페이지를 보면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라는 표현이 생소하실 텐데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식민지 배상 등 과거사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사를 기억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한 후, 이러한 갈등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동아시아 기억 구성체의 형성을 도모하자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CGSI는 미시사와 발굴되지 않은 기억 및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 과거사 문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성차별, 사회적 소수자, 북한 인권과 탈북 이주민 등 흩어진 기억을 찾아내고 증언과 기록의 조건 및 의미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다원주의적 공존, 탈식민주의, 탈국가주의를 지향하는 기억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

  

  

  

 지난 4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에서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 전시가 개최되었다.


▲ (왼쪽부터) 전시 포스터/ SeMA 벙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벙커로 내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입구와 이후 마주하게 되는 좁고 기다란 복도는 마치 탄광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실제론 벙커의 출구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출입구를 바꾸었을 정도로, 전시는 세밀하게 쪼개진 미로 같은 공간과 빈틈없는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의 제목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요.


 본 전시는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기록에서 출발해 강제노동자들의 일상과 이들이 거주했던 장소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 도시 개발 속에 사라져 가는 강제노동의 현장, 귀환하지 못한 노동자의 편지와 묘비 위에 새겨진 기억을 조망하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소환하고 환기시킴으로써 존재감 없고 굴곡진 삶을 살아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이라는 제목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공적인 기억이 아닌 ‘일상의 기억’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본 전시가 다른 역사 박물관과 차별화된 점은 노동의 문제들을 일상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제국 대 식민지 조선이라는 이분법으로 강제노동을 단순화시키기보다, 역사적 문제와는 별개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일상과 세계를 전유하며 살아갔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며, ‘아래로부터의 지구화’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에 대한 일상의 기억이 관람객들이 처한 동시대성, 그리고 지금 현재 노동의 문제들과 이어지는 접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일상적 자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수집되고 전시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본 전시를 위해 CGSI 내부 연구교수님들과 조교들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그리고 정혜경, 안해룡 등 연구자들의 아카이브 사료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수많은 사료들을 분류하고 재배치하는 작업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부분은 본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 전시라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미학적 관점에서 당대 노동자들의 일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사진들을 위주로 발굴, 채록, 기록, 정리하였습니다.
또한 일상사의 곡절을 과도하게 부각시킬 경우, 전시가 신파적인 서사를 내재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자료 하나하나에 캡션을 기입하기보다 전시장에 배치된 아카이브 리플릿으로 관람객이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카이브 사료 정리와 디스플레이 작업 이외에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장소 선정과 작가 커미션이었습니다. 전시 장소인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는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공간입니다. 또한 노동의 일상과 역사적 맥락을 미학적으로 구현하는 미술 작품을 선정하는 작업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CGSI 커미션으로 진행된 조덕현, 김소영, 최원준 작가들의 작업들은 강제노동과 일상, 디아스포라와 노동 이주사, 자유 임노동과 강제노동의 현실성 등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왼쪽부터) 언더그라운드 엘레지1 (조덕현, 2021)/ 화광: 디아스포라의 묘(김소영, 2021)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초입에 크게 걸린 강제노동자들의 사진들을 지나 왼쪽으로 이동하면, 강제노동자였던 윤병렬 씨의 일상용품들을 실물 사료로 전시한 ‘윤병렬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면 전시장 밖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리던 노랫소리가 점차 선명해지는데, 바로 조덕현 작가의 작품 ‘언더그라운드 엘레지’이다. 이 작품은 노동자의 인물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넣은 검은 박스와 실제 가수이자 강제징용 노동자였던 최병호 씨의 노래, 다음 세대들의 삶을 노래한 작가의 에세이 총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강제노동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서사를 담은 정혜영 아카이브, 해방 이후 중동 파견 노동자들의 일상과 편지들을 담은 최원준 작가의 ‘얼굴의 역사’, 노동의 의미를 유려한 조각으로 형상화한 정재훈 작가의 ‘내가 사는 피부’, 배달 노동과 컨베이어 벨트 노동을 형상화한 오민수 작가의 ‘제자리 구르기’와 ‘폭파’ 등이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전시는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국한되지 않고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노동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대 서사 속에서 소실되어 가는 개인의 일상사를 표현한 김영글 작가의 비주얼 에세이 ‘해마 찾기’, 전기 손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차재민 작가의 ‘미궁과 크로마키’, 고려인 이주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김소영 작가의 ‘김 알렉스 식당’, 돌아오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묘비를 형상화한 ‘화광:디아스포라의 묘’ 등의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를 통해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한 노동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시를 통해 노동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세심하게 동선을 따라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몫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강제노동의 당대성을 고려하고, 큐레이션을 통해 현재에 제시해야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윤색과 각색이 아닌 온전한 전달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본 전시에서는 아카이브 사료와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를 해석하고 노동의 현재적 의미를 조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고, 강제노동성의 현실과 당대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 관람객들이 미리 알아 두면 좋을 지식이나, 전시 관람을 마치고 돌아갈 때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전시 전체의 서사와 맥락을 파악한 후 전시를 관람하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특히 전시 말미에 수많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초상 사진과 함께 이름들이 걸려있는 방이 나옵니다. 노동에 끌려간 노동자들을 사진을 통해 증명하고 이름을 재호명함으로써 현재로 소환하는 것, 그리하여 이분들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 주는 것이 바로 이 전시가 지향하는 지점입니다.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를 통해 쉬이 배제되었던 노동자들의 서사와 다양한 아카이브 사료로 구현된 젠더적 기억, 노동의 현재적 의미, 노동과 디아스포라, 죽음과 기억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있지만 없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름을 호명해 다시 이 자리에 있게 하는 공명의 장이 되길 기대합니다.

  


▲ (왼쪽부터) 노동자들의 단체사진과 초상사진 ©서울시립미술관/ 걸려 있는 노동자들의 이름

  

  

 기념비와 위령비에 각인된 노동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안해룡 작가의 ‘망각된 기억들’을 지나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끔한 모습으로 찍은 연출된 사진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맞은편, 노동자들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목적으로 찍었던 사진과 창씨개명된 이름들을 함께 붙여 둔 벽을 따라 걷다 보면 드디어 그들의 진짜 이름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길게 걸린 띠에 선명히 적힌 세 글자 이름들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다시 불리고, 해방되고, 기억된다.

  

 전시 ‘있지만 없었던 Naming The Nameless’는 오는 6월 6일까지 이어진다. 있지만 없었고, 존재했지만 불리지 못했던 무수한 이름들이 전시장을 찾는 많은 이들의 발길 속에서 소중히 일깨워지기를, 서강가젯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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