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기 위해 옥상에 오르는 화가, 김미경 동문(국문 79)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3.08 15:01:07
조회 2,117


      


     



▲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촌 역사책방에서 만난 김미경 동문(국문 79)

     

27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6년째 매일 옥상에 올라가 펜을 잡고 서촌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옥상에서 보이는 서촌 풍경, 골목길, 인왕산 자락에 피어있는 꽃과 나무, 춤추는 사람들, 마음 한구석을 울리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그림을 그리는 서촌 옥상화가의 이야기를 서강가젯이 만나 들어보았다.



01.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


서촌과 그녀의 인연은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2학년 때, 학과 선배의 소개로 인왕산 자락에 걸쳐 있는 청운동의 한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게 되어 졸업할 때까지 서촌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고, 생각과 고민이 많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인왕산과 붙어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졸업 후 한겨레에서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7년을 살았다. 그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할 때 옥상에서 우연히 보게 된 풍경에 감명받았고 당시 사용하던 갤럭시노트에 그림을 간간히 그리다가 2014년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페이스북에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올리다 보니 친구가 ‘서촌 옥상화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2017년에는 한겨레에 ‘김미경의 그림나무’라는 코너로 그림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거기서도 옥상화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옥상의 어떤 점이 그녀를 매료되게 한 것일까? 옥상에서는 땅에서 보이지 않던 전체 구도가 확연히 보인다.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그녀는 새 수집가였는데, 새를 좋아하는 것과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비슷한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조감도와 새의 시각에서 그린 지도를 보고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갖게 되는 철학적인 고민이 새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




▲ <좋아서> 2017년, 펜, 72.7 X 116.8cm


02. 그림 농사꾼의 5년 그림 작황 보고서


2014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올해 6년 차 화가가 된 김 동문은 처음에는 매일 10시간씩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한 시간이라도 꼭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서촌에 살며 집 옥상에서 그리기도 하고 인왕산에 가기도 하고, 겨울에는 옥상 카페에서 그리기도 한다. 예전보다 그림 그리는 속도도 빨라지고 익숙해지다 보니 안에서 그리는 그림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진을 찍어 보고 그리면 감흥이 떨어진다. 풍경이나 나무, 꽃은 직접 바람을 맞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바깥에서의 느낌을 갖고 그려야 한다고.

 

그녀는 그림 그리는 일을 ‘농사’에 비유했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나 자신을, 내 감성을 그림으로 솔직하게 그려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걸로 먹고 산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감정에 더 솔직해져야 하고, 누구에게 시킬 수도 없으며, 마음과 몸을 온전히 써야 하는 일이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점도 농사꾼과 비슷하다. 옥상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고 바람을 맞으며 매일 열심히 그림 농사를 짓는다고 스스로를 ‘그림 농사꾼’이라고 말했다.


 

03. 세상에 나 혼자 그린 그림은 없다


그림에 몰두해온 6년 동안 김 동문은 3번의 전시회를 했고 올해 가을에 네 번째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촌 동네를 묘사한 서촌 옥상도를, 두 번째 전시회에서는 서촌의 꽃을 그린 그림을, 그리고 세 번째 전시회에서는 그 동안 그렸던 옥상도, 꽃을 그린 그림들, 그리고 춤을 추는 사람, 시위하는 군중들도 그려 전시했다.

 

“이것도 그림이냐”라는 말도 들어봤다.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기존 화단에서는 다루지 않는 새로운 영역의 화가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갖고 싶어하는, 그들이 삶 속에서 느낀 것, 고민한 것, 좋아하는 것을 진지하게 기록해 낸 것이라면 다 좋은 그림이란다. 또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기에 누구든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면 이 만큼은 다 그릴 수 있다는 마음 따뜻한 용기를 주기도 한다.

 

“제가 진달래를 그리면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고 하는데, 속으로 ‘진달래가 예쁜데 나한테 칭찬을 하면 진달래한테 미안한데’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꽃한테 모델료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비싸게 팔면 사기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꽃도, 서촌 풍경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그릴 수 있는 능력까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지,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고, 세상에 나 혼자 그린 그림은 없다고 말한다. 기자로 살아왔던 시간으로 인해 묘사하고 기록하고 싶은 열망이 평생 그림만 그려온 사람들과는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기에 이러한 경험과 시간이 모두 소중하다고 한다.

 



▲ <서촌 골목 춤> 2018년, 펜, 36 X 26cm


54세의 나이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다는 김 동문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주저 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라고 명료하게 답했다. 회사 일을 할 때에는 일이 좋았지만 온 몸과 감성을 쏟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림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좋고 그림 도구를 사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무모해 보이더라도 부딪혀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는 과정이 인생이자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첨부파일
285x200.png 다운로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