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냄’에 대하여, 이지현 동문(사학 90)을 만나다.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2.01.25 14:16:33
조회 2,216



  

 삶은 고통스럽다. 저마다의 이유로 버겁고 슬픈 삶을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여기 그 질문에 대해 답을 주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펜션 타나토스’를 쓴 이지현 작가다. 만화 펜션 타나토스는 이지현 작가가 간암을 치병 중에 쓴 작품으로, 자신의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결심에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삶이 불행뿐이라고 생각했던 ‘펜션 타나토스’의 주인공, 결국 동반자살카페에 가입하여 회원들의 자살을 돕는 펜션 타나토스로 행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펜션 타나토스로 행하기 전에 이지현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펜션 타나토스는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에서 볼 수 있다.)

  

  


▲ 이지현 동문(사학 90학번)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학과 90학번이고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삶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일상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어서 제 이야기부터 풀어놓고 있습니다.

  

  

  

‘펜션 타나토스’가 2021년 주독일 한국문화원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또 2014년 한국만화 영상진흥원 연재 지원에 당선작으로 뽑혔고, KT 올레마켓, 중국 Tencent에 연재되고, 옌타이 한중 박물관에 전시되는 등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펜션 타나토스가 이렇게 국내를 넘어 다른 나라에서까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 비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솔직히 이 만화가 크게 인기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어쨌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만화가 전달되어서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았다는 연락을 받을 때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서강에서 어떤 대학 생활을 보내셨나요?


 대학에서 만난 친구, 선후배만큼 선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뭐든지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어떤 모습이든지 따뜻하게 포용해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상처받은 기억으로 인해 타인의 접근에 방어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견고했던 마음의 벽을 녹이고 다른 이의 상처에 관심을 두게 해준 게 대학 시절 만난 사람들입니다.


 원래 시인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없어진 노고문학회에서 주로 서식했는데 [삶이 곧 시]라는 노고문학회의 모토가 관념적이었던 제 사유 방식을 바꿔주었습니다. 현실과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은 노고문학회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농활 가서 메추리 알을 주워 미역국에 넣어 먹고 빗물이 떨어지는 홈통에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 다시 가서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습니다. 도서관 아르바이트하면서는 서로회 방에서 다른 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매일 술자리가 있어서 과모임과 동아리 모임에 번갈아 참석하며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았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젓가락 두들기고 노래 부르며 놀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만화를 보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매체 중에서 만화를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미술 전공이 없는 서강대를 졸업하고 만화가로 일하는 것은 꽤 특이한 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만화가의 길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말 때쯤에 김혜린 작가의 [겨울새 깃털 하나]에 나오는 시인이 저를 닮았다며 권해준 친구가 있었고 문학에서나 구현되는 줄 알았던 사실주의의 시적인 표현이 만화로도 표현되는 걸 보고 만화가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80년대 후반은 한국만화의 부흥기로 다양한 장르의 만화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그림 실력의 수려함보다는 내용의 진정성을 높이 사는 분위기가 있어서 도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고 반골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만적의 난이나 동학처럼 백성이 등장하는 역사 만화를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학과를 지망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와서는 만화 동아리가 아니라 원래 꿈이었던 문학반에 들어갔고, 문학반 바로 앞이 학보사다 보니 서강 학보 만평을 그리고 되었고, 말씀하신 대로 미대가 없는 서강대다 보니 실력과 무관하게 총학생회에서 하는 그림 관련 일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휴학 중 전화번호부와 교차로를 뒤져 지역 신문사나 작은 출판사 삽화 일을 했고 학비를 직접 벌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외주 업무를 하면서 부족한 그림 실력을 메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름 경력이 되어 90학번 동기 김정미 양이 지학사에 취직하면서 독서평설 전담 일러스트레이터 자리를 내주었고 그걸 경력으로 삼아 10여 년 정도 학습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도 서강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영어 참고서 삽화 쪽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게 그림으로 먹고 살길을 열어준 영문과 정미는 2000년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제가 영정을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정미 이름으로 학교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싶은 게 일하는 목적 중 하나입니다.

  

  


▲ 야오네 집 표지

  

  

  

작가님의 만화 ‘야오네집’에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어머니의 인생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때부터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내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고증을 해내셨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과정이 사학과에서 했던 공부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을까요?


 출판이 예정되어 있기는 한데 시간에 쫓겨 급하게 그리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아서 전면 개작할 계획입니다. 사학과에서 공부는 제대로 한 적이 없지만, 증거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라는 실증사학적인 태도의 중요성은 인이 박이게 들어서 어떻게든 증거를 갖다 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증거라고 해봤자 개인사다 보니 제 일기나 신문 기사 정도였지만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도록 기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그릴 때는 개인사와 사회사가 별개가 아니라는 관점에 충실하게 연도별 진행에 중점을 두고 개작할 예정입니다. 내용을 산만하게 만들었던 심리 분석이나 철학적 사유는 현재 그리고 있는 암 투병기에 집어넣을 생각이고요.

  

  

  

또 위의 작업이 자신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이라서 위의 작업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작가님께는 어떤 의미 셨을까요?


 저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처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며 붙들고 있던 기억을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열어 보이면서 이제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부정적인 기억은 [자아]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소도구일 뿐, 기억이 곧 나라는 환상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나라는 환상을 [아상]이라고 합니다. [나]라고 믿는 존재가 기억으로 쌓은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집과 독선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심리학, 과학, 명리학, 철학 등 다양한 공부를 하시면서 본인을 인문학도라고 밝히셨던 바 있습니다. 이렇게 졸업 후에도 많은 공부를 하신 이유가 있는지, 또 어떻게 졸업 후에도 열정적으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으셨는지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창작자가 어떤 것이든 재료를 가지고 있어야 대중에게 선물할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늦게서야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찾아냈는데요. 저의 콘텐츠는 상처받은 기억만큼의 공감 능력이었고 제 인생에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배워서 남 주자],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만화를 그리자. 이게 제 삶의 주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교 졸업 후 [사랑의 전화]에서 교육을 받고 전화 상담 자원봉사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배운 것이 [들어주는 게 상담의 전부다.]였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주로 했고, 누구나 조금씩은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생기는 과정에는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을 만들어 가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는 생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게 삶이라는 생각을 연달아서 하면서 기억을 선택하고 사유를 구성하는 근원적 원인을 찾다 보니 물리학, 생물학, 철학 등의 공부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더군요.

  

  


▲ 펜션 타나토스 표지

  

  

  

펜션 타나토스를 그리실 때는 간암 치병 중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금도 간암 ‘투병’이라는 단어를 쓰려다가 누군가 “나는 병과 ‘싸우는’ 것(투병)이 아니라 병을 ‘다스리고 있다.’(치병)”라고 말한 것이 떠올라 단어를 고쳐 썼는데요, 작가님께서도 ‘간암을 선물 받은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간암이라는 병이 작가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저는 원래 지병으로 B형 간염을 갖고 있었는데 2002년 첫 아이를 가질 때부터 간 수치가 올라서 2010년에 간 경화, 2013년에 간암, 2020년에 유방암까지 줄줄이 걸렸으니 20년 동안 반은 환자인 상태로 살았네요. 몸이 아플수록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저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아파 본 만큼 타인의 아픔도 느낄 수 있다는 걸 항암 하면서 더 크게 느꼈습니다. 또 간암 때만 해도 쉽게 극복해서 제가 건강하고 잘나서 이겨낸 줄 알았는데 항암치료에 희소 질환까지 합병증으로 겪으면서 죽음을 코앞에서 만나다 보니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소중한지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차기작에 대해 여쭈어도 될까요? 펜션 타나토스를 보면서는 ‘고통스러운 삶인데 왜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 필사적으로 답변을 던지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시고 또 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실지 궁금합니다!


 작년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사업 3개에 선정되어서 펜션 타나토스 출판 외, 암 투병기와 철학 만화 작업을 했습니다. 암 투병기는 한 권 분량 정도 작업이 완성되었는데 최근 웹툰 경향에 맞지 않아서 모든 플랫폼에서 투고 거절을 당했습니다. 바로 책으로 낼 수도 있겠지만 이익을 얻기보다 공부한 것을 공유하는 개념으로 만화 작업을 하고 있으므로 홈페이지형 블로그나 포스 타입 등을 통해 무상 유포하는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도 벌고 이름도 얻어야 가능한 일이라서 일단은 매우 대중적인 장르를 먼저 해 볼 생각으로 준비 중입니다. 저는 삶과 세상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거의 찾은 것 같고 해온 일과 역량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남은 시간은 작품을 통해 세상에서 받은 빚을 갚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만화가, 더 넓은 관점에서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자의 꿈을 꾸는 서강대 후배들이 많은데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굳이 창작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기가 속한 시대적 환경에서 자기답게 살아내는 것,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거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그것만으로도 저는 모든 사람이 창작자이며 자기 삶의 창조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창작자고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의무이니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살기를 포기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입니다. 병과 실패와 좌절을 콘텐츠로 삼아 살아온 제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유입니다. 크게 이룬 것이 없음에도 저보다 나은 여건의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고민을 상담하고 울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제게 힘든 시간이 있어 들어주는 귀가 열렸음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만난다면 그게 뭐든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길 바라요. 그 일을 겪으려고 세상에 온 것이고 그 일을 넘어서서 삶에 대한 사랑을 배우려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이 여행은 반드시 끝나며 모두 헤어질 사람들이니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주길 바랍니다.

  

  

 이지현 작가는 인터뷰 내내 말하고 있었다.
“고통은 더 넓은 삶을, 실패는 더 깊은 삶을 나에게 열어주었다고. 그러니 당신도 이런 삶을 살아보라고. 우리 같이 살아내자고.”
추운 겨울이다. 서강 가족들도 헤어질 소중한 인연들의 손을 붙들고 올해도 잘 살아내 보자고 다짐하는 한 해가 되기를 서강가젯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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