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유학, 40년 연구의 결실을 보다, 조긍호 명예교수님을 만나다.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1.11.01 10:14:27
조회 1,630


 유학과 심리학,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제로 반평생을 연구에 몰두한 학자가 있다. 84년부터 서강대에서 심리학에 대한 가르침을 아낌없이 전해주었던 조긍호 명예교수님이 바로 그다. 유학 사상에서 심리학적 함의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유학심리학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의 연구과제였다. 올해 그 연구과제를 풀어낸 13권의 저서를 집필을 마쳤다. 그 대단원의 막에서 조긍호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 조긍호 명예교수

Q. 서강가젯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984년부터 시작하여 2015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1년동안 서강에서 심리학 교수를 지냈던 조긍호입니다만, 지금은 백수입니다.

Q. 올해 13권의 저서 집필을 마치셨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고단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서강에서 자리를 잡은 1984년 이후 저의 학문적 목표는 "유학 사상의 심리학적 함의를 찾아내고, 이에 바탕을 둔 유학심리학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업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유학의 경전들을 원문(한문)으로 읽어야 하는 일이 제일 큰 부담이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는 그런대로 익숙해졌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그 성과를 11권의 책으로 출간할 계획을 세웠고,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학의 경전과 함께 심리학은 물론 철학 등 관련된 다른 분야의 많은 문헌을 새로이 읽어야 했고, 이 일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성과를 얻기도 하여, 11권으로 계획했던 책이 13권으로 늘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이 고단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즐거웠습니다. 재미가 없었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겠습니까?

Q. 저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는 40년 동안 유학의 경전에서 심리학적 함의를 도출해내는 작업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심리학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유학을 이론 틀로서 생각해내시고 이를 바탕으로 심리학에 접목하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심리학은 실험과 관찰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실증과학입니다. 1984년 제가 서강으로 옮긴 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부딪친 가장 커다란 문제는 실증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생들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강에 심리학과가 생긴 것은 2006년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실증적인 자료를 모으지 않아도 되는 이론심리학의 분야로 눈을 돌렸고, 마침 저 자신이 어려서부터 관심이 있었던 “유학 사상의 심리학화 작업”에 손을 대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유학적 분위기가 깊이 배어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고, 그런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유학 사상에 관해 호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중용사상에 깊이 빠져 있던 선배를 만나 그 영향을 받으면서, 심리학의 정통 수련을 쌓은 다음 언젠가는 유학 경전의 심리학화 작업을 함께 하기로 굳게 결의한 일이 있었는데, 서강에 심리학과가 없어 실증연구를 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히자 이 결의를 실현할 생각을 굳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40년간 집필한 13권의 서적_ 혼신의 노력으로 유학심리학 체계를 집대성하였다.

 조긍호 교수의 그간의 여러 저술들의 학문적 기여는 이미 널리 인정을 받아온 바, 1999년 대한민국 학술원상(인문・사회과학 부문)을 수상한 [유학심리학: 맹자・순자 편, 1998년]을 시작으로, [유학심리학의 체계 Ⅰ: 유학사상과 인간 심리의 기본구성체]는 2018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로, [심리구성체론의 동·서 비교 III]도 2018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문화, 유학사상, 그리고 심리학]이 2020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더불어 그간의 독창적 연구 성과들로 저자는 서강학술상(1999년, 서강대학교), 한국심리학회 학술상(2008년, 한국심리학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10년) 등을 수상하였다.

Q. 또한, 동/서의 비교와 이를 아우르는 심리학적 이론체계를 구축하는 것 또한 교수님 연구의 핵심과제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떠한 내용의 연구였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실증 심리학에서 이론 심리학 분야로 눈을 돌릴 당시 심리학계의 가장 두드러진 관심사는 서구 개인주의와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문화 차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동·서 문화 차의 근원은 두 사회의 지배적인 이념체계에서 인간을 파악하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유도되어 나오는 것이라 보고,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삶의 철학인 자유주의와 동아시아 사회의 핵심적인 이념체계인 유학 사상에서 도출되는 인간관의 차이가 동·서 문화 차의 근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인간관의 동·서 차이는 인간의 존재의의, 인간의 고유특성 및 인간의 존재 양상에서의 차이로 귀결지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추론이었습니다.


 자유주의 체계에서는 인간의 존재의의를 개체성에서 찾고, 인간의 고유특성을 이성이라 보며, 인간은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실체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구 사회에서는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러한 사조를 기조로 하여 태동한 현대 서구심리학은 개인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 현상 중심주의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유학의 체계에서는 인간의 존재의의를 사회성에서 찾고, 인간의 고유 특성을 도덕성이라 보며, 인간은 소인(小人)의 상태에서 군자(君子)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변성을 갖춘 존재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연계성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조를 바탕으로 하면 사회성 중심주의, 도덕성 중심주의 및 미래 지향성 중심주의를 기조로 하는 심리학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동·서의 인간관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문화와 심리학의 차이에 관한 입론이 이후 저의 모든 이론 전개의 기본 틀이 되고 있습니다.

Q. 네 번째 연구주제는 동/서 비교를 기반으로, ‘유학의 창시자들이 현대 심리학 전공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질문이 흥미로워 학부생들도 흥미를 느끼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당 연구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유학의 경전 속에서 인간 이해의 틀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현대 심리학을 조감해봄으로써, 현대 심리학이 보지 못한 새로운 연구 문제를 찾아내려는 독서의 자세가 유학의 고전을 읽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방법을 기초로 하여 유학의 고전들을 읽으려 해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새로이 구축될 유학 심리학은 “공자·맹자·순자 같은 유학의 창시자들이 현대에 태어나 심리학 전공자가 되었다면, 그들은 심리학의 체계를 어떻게 구성하였을까?” 하는 추론을 기반으로 하여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유학자들의 인간관의 핵심인 사회성·도덕성·가변성의 가치를 기초로 해서 구축되는 유학 심리학의 체계는 개체성·이성·실체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태동한 서구 현대심리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유학심리학의 체계 Ⅰ~Ⅲ》의 원저자는 공자·맹자·순자이고, 저는 다만 그들의 대필자일 뿐입니다.

Q. 교수님의 저서는 4가지 연구주제를 시리즈로 집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저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지금까지의 제 작업은 네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동아시아 집단주의는 유학 사상을 기조로 하여 태동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증적인 자료와 이론적인 고찰을 통해 밝혀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동·서 인간관의 차이를 바탕으로 문화 차를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인이 심성과 행동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특징들을 찾아내었습니다. 다음으로 유학 사상에서 인지·정서·동기에 관한 이론체계를 도출하여, 앞에서 밝혀낸 동아시아인들의 현실적인 특징과 대조하여 보았습니다. 그 결과 양자 사이에 일관되는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유학 사상이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사상적 배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한국인 이해의 개념틀》과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유학사상적 배경》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발표하였는데, 이는 동·서의 문화 차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읽어보면 좋을 것입니다.


 저의 두 번째 작업은 동아시아인의 삶의 지도이념이었던 유학의 경전으로부터 심리학적 관련이 깊은 이론체계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유학은 인성론(人性論), 군자론(君子論), 도덕실천론(道德實踐論), 그리고 수양론(修養論)의 네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구축되고 있는 사상체계인데, 이들 각각으로부터 심리구성체론·이상적 인간형론·사회관계론·자기발전론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 문제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첫 졸저인 《유학심리학: 맹자·순자 편》에 실어 발표하였고, 이를 좀 더 정밀하게 확장한 내용을 《선진(先秦)유학 사상의 심리학적 함의》에서 제시하였습니다. 유학의 심리학적 함의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자 하는 독자는 이를 보면 되겠습니다.


 저의 세 번째 작업은 이와 같은 유학의 네 체계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심리학적 연구 문제 각각에 대해 유학의 관점과 서구심리학의 연구 내용을 대조해 봄으로써, 유학 사상에 내재 되어 있는 인간 이해의 이론체계를 현대 심리학의 관점과 비교해서 네 권의 〈동·서 비교 시리즈〉로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결과를 《심리구성체론의 동·서 비교》, 《이상적 인간형론의 동·서 비교》, 《사회관계론의 동·서 비교》, 《자기발전론의 동·서 비교》 네 권의 졸저로 나누어 발표하였습니다. 이 네 분야의 심리학 전공자들이 자기 분야의 동·서 관점을 비교해보려면, 해당 책을 읽어보면 되겠습니다.


 저의 네 번째 작업은 앞선 물음에 대한 응답에서 밝혔듯이, 이러한 〈동·서 비교 시리즈〉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유학 사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심리학의 체계를 구성해서 세 권의 《유학심리학의 체계》로 정리하고, 맨 마지막에 현대 서구심리학과 유학심리학의 통합을 통해 글자 그대로의 보편심리학 구축의 가능성을 펼쳐 보이려 하였습니다. 동아시아가 더 이상 세계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동아시아적 사상체계를 기반으로 성립될 수 있는 심리학의 모습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책들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 조긍호 명예교수님

Q. 84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에게 서강이란 어떤 곳인가요?


 제가 대학에 교수로 자리 잡은 해는 1978년이고 정년퇴임한 해는 2015년이니까, 37년 동안 대학에 몸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중 8할이 넘는 31년을 서강에서 보냈으니, 서강은 제 학문 생활의 거의 전부를 보낸 곳입니다. 특히 동·서 문화 차의 근원 탐색과 유학 심리학 체계의 구성 등 제가 심혈을 기울인 공부는 모두 서강에 있으면서 이룬 일이니, 서강은 비록 저의 모교는 아니지만 제게 있어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제 아들은 자랑스러운 서강 졸업생입니다.

Q. 교수님처럼 오랜 기간 자신만의 연구, 공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공자는 자신을 자평하여 호학자(好學者,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와 회인불권자(誨人不倦者, 남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라고 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일과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일을 삶을 살아가는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서울대 심리학과의 정양은 선생님은 이러한 호학과 회인불권의 화신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호학과 회인불권의 측면에서 선생님을 본받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께 죄송하고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이 두 가지는 공부하는 사람의 삶의 지표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하든지 새로운 일을 열심히 배워 남들과 나누려는 자세를 갖고 노력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즈음 몹시 어렵겠습니다만,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나누려는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꼰대인가요?

  

  

 31년간 서강에서 가르침을 주신 조긍호 교수님, 서강가젯과의 만남에서도 연구과제에 대한 알찬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셨다. 교수님은 학부생 기자에게도 겸손과 감사를 표현하며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다. 이러한 교수님이 회인불권자가 아닐 리 없고 그에게 배운 학생들은 호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조긍호 교수님의 더 깊은 연구는 13권의 저서로 모든 호학자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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