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소설가 백수린(프문 석사 06, 박사 11) 동문 인터뷰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1.01.26 11:14:07
조회 2,096


 소설집 『여름의 빌라』로 2020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백수린을 서강가젯이 만나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백수린(프문 06)이 그리는 세계에서 그것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언어, 문화, 계층, 상황…. 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소통을 무력하게 만든다. 백수린의 인물들은 그 외로움을 명확히 인지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간다. 더듬더듬 이어지는 걸음은 희미하지만 지울 수 없이 명백하다. 관계가 오해의 연속이라면, 최선을 다해 오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성실한 다정을 말하는 소설가 백수린 동문을 서강가젯이 만나보았다.

 

  

▲ 백수린 동문(프문 06)

  

  

 # 시간의 궤적-백수린이 그려 온 것들

  

 백수린 동문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거짓말 연습」으로 등단했다. 평론가 김윤식이 "물건 되겠다 싶데"라며 그를 극찬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햇수로 10년이 지나 되돌아본 지금, 그 예견은 상당히 적확해 보인다. 백수린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바쁘게 지내면서도 집필을 쉬지 않았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소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에세이집 『다정한 매일매일』 등을 썼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5년, 2017년, 2019년 젊은작가상, 2018년 문지문학상과 이해조소설문학상, 2020년 현대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날로 넓고 깊어져 가는 백수린의 소설 세계 전반을 돌아보자.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불문과 석사 06학번, 박사 11학번 백수린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이외에도 번역을 하거나 서강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칩니다.

Q. 대학원 과정 중 등단하셨는데, 학자에서 작가로 진로를 변경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다만 소설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제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쓰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불문과에 진학하고 문학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소설 쓰기에 미련이 남았어요. '써 보지 않으면 후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2009년 석사 학위를 마치자마자 2년간 습작 생활을 했습니다. 2011년 「거짓말 연습」으로 등단하고, 여태까지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습니다.

Q. 재능을 의심한 시기가 있으셨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요즘은 좀 어떠신가요.

 작가에겐 어떤 천재성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해요. 저는 천재성이 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감각의 차이 역시 천재성 만큼이나 글을 쓰는 데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가 가진 것들에 집중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나가려고 노력합니다.

Q. 오랜 기간 소설을 쓰시면서, 작가님 스스로도 어떤 변화를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2018년 출판)이나 『여름의 빌라』(2020년 출판)를 통해 저를 접한 독자들이 많아요.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기점으로 그 이전까지의 이야기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처음 창작을 시작할 때는 소설을 통해 제 안의 어두운 면을 그렸어요. 그러면서도 제 나름대로 희망적인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독자들께서는 '우울한 사람들 얘기를 한다.'라고 평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지금의 이야기에 견주어 보면 확연히 다른 지점이 있어요.
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저는 사람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그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어요. 초기 작품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왜 이렇게 소통이 어려울까 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고독을 받아들이면서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은 그대로라도 제 소설은 계속 변화하는 게 아닐까요.

Q. 그런 움직임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언젠가부터 제 문제에만 침잠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고, 싸우고, 끝내 벽을 넘어가는 투쟁 서사를 쓸 수 있는 소설가는 아녜요. 제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건 아니고요. 그렇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일이 사회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를 넘어 세계를 향하는 문제의식을 소설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 친애하고, 친애하는-이야기의 세계

  

 백수린 소설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그의 인물들은 잔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미세한, 그러나 분명 뚜렷한 균열을 겪는다. 투명 수채화 같은 담백하고 섬세한 문장은 그 혼란과 슬픔을 부각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것이 단순한 문체가 아닌, 백수린 시선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백수린만이 쓸 수 있는 대체불가한 이야기들. 그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백수린의 소설들. 왼쪽부터 『폴링 인 폴(2014)』, 『친애하고, 친애하는(2018)』, 『여름의 빌라(2020)』

Q. 여성 인물을 많이 등장시키고 공들여 그려내십니다. 작가님의 여성들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얌전하고 전형적인 것 같으면서도, 마음속에 들끓는 이야기가 있어 인상적이에요.

 문학에서 통념적으로 재생산되는 이미지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여성의 삶은 너무 쉽게 사소해지고 주변화되었어요. 문학적 창조력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고, 여성 서사는 생활과 현실의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됐습니다.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런 편견과 싸우며 여성의 사적 이야기가 인간의 삶으로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애써 왔습니다. 저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제 작품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는 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저는 그 소설이 여성 삼대를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읽히기 바랐어요.

Q. 『친애하고, 친애하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 소설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과 죽음, 상처와 용서, 궁극적으로는 다정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라고 쓰셨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가요?

 네. 맞아요.

Q. 「폭설」 같은 작품에서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엄마'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엄마, 할머니 등 전형적인 여성 인간상을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해석하시는 점이 흥미로워요.

 모녀 관계는 제가 꾸준히 관심을 가진 주제 중 하나예요.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그려지는 '엄마'의 모습은 전형적입니다. 개인적 자아보다 모성을 우선하도록 요구되는데, 그런 통념적 이미지를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폭설」의 주인공은 엄마를 자식과 분리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존재,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받지 못하는 지점이 있잖아요. 엄마라는 정체성이 개인이 가진 모든 고유성을 박탈할 수는 없어요. 구조적으로 정의되는 역할을 넘어서야만 개인을 오롯한 존재로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점에서 '엄마'의 문제에 자꾸 관심이 갔습니다.

Q. 「시간의 궤적」,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등에서는 연애 감정이 아니더라도 우정 등 굉장히 섬세한 관계가 두드러집니다. 관계와 감정을 정의하는 작가님만의 시선이 궁금해요.

 우리 사회에서는 '연애'라는 관계 맺음 방식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연애는 정말 재미있는 관계고 저도 연애소설을 썼지만, 연애가 관계의 궁극이라는 사고방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관계는 그런 명명에 따라 위계를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것이 가진 농밀함의 정도에 따라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서 명명되기 이전, 관계의 기저에 존재하는 사랑과 미움의 문제를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계의 맥락에서 조망하고 싶었어요, 어떤 독자님들은 제가 소설 속에서 여성 인물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우정-특히 여성 간의 깊은 우정을 그리는 일이 즐겁습니다. 여성들의 우정에는 그들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간의 문학에서 여성들의 우정에 대해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저는 여성들의 우정에는 분명, 연애 감정과 다른 깊은 애정과 연대감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Q.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작품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소통의 불완전함과 그로 인한 외로움의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아주 예전부터 해 왔어요. 우리는 각자의 경험만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어떤 관계에 있든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소통의 문제에 굉장히 오랫동안 골몰했어요.
저는 소설을 쓰면서도 언어가 굉장히 불완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벅찼다'라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지만, 제가 그 형용사를 썼을 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과 독자가 읽어내는 감정은 다른 것처럼요. 소통의 핵심 수단인 언어조차 우리가 마주치는 미세하고 복잡한 감정의 결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다는 게, 그래서 소통은 결국 미끄러진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글을 쓰다 보면 단순한 외로움뿐만이 아니라, 그 연약함과 이해불가능성을 어떻게 끌어안고 서로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Q. 작가님의 인물들은 외로워하는 것 만큼이나 그 고독을 안고 나아가는 면모가 아름답습니다. 그런 다정함에서 힘을 얻게 되는데요.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우지 않는 것이 백수린 소설의 한계'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은 어쨌든 경계가 없는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와 타자 사이에 경계가 없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르니까요. 저는 다만 내가 타인에게 긋는 그 경계선의 범위를 1mm라도 넓게 그려나가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기 세계를 조금씩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만 천국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비관적이고 꽤 허무주의자예요. 그러나 소설을 쓸 때는 삶의 가치를 의심할 수 없어요. 작가에서 독자에게 소설 한 편이 전해지기까지는 굉장한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제가 공들여 이야기를 지어내면 출판사에서 그걸 갈무리해 책으로 만들어주시고, 독자들은 시간과 감정을 들여 읽고 곱씹어 주시지요. 소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부질없다면 이렇게 수고로운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Q. 작가와 독자 사이에도 소통불가능한 지점이 있지요. 작가님께서는 작가님 소설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음…. 얌전하고 전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소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도사리고 있는 아주 작은 균열과 미세한 혁명을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백수린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섬세한 장면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어휘로 정의하지 않아도, 장면으로부터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는데요. 그런 섬세함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을 헤아리는 방법이실까요?

 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언어로 감정을 정의하는 데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굳이 감정을 단언하기보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구축하는 데 집중합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젊은 시절 엄마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어요. 답답한 일상을 보내다가 나간 산책길에서 할머니가 바다로 뛰어드는데, 그 모습을 어린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죠.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되지만 그 안에서 '할머니', 그걸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잖아요. 바라보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기를 바라요.

Q. 소설 쓸 때 중시하는 부분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으실까요?

 갈등을 만드는 게 항상 어려워요. 감정 폭발의 클라이막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많이 고민됩니다. 제가 쓰는 갈등은 눈에 띄게 거창하고 극적인 다툼보다, 복잡한 내면이나 순간적으로 조각나는 관계의 연약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독자가 납득하기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감정선을 최대한 탄탄하고, 섬세하게 짜는 데 집중합니다. 장면 묘사는 그 과정에 다다르는 하나의 도구고요.

  

 # 다정한 매일매일-우리를 살게 하는 온기

  

 백수린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서강에서, 그리고 요즈음. 그는 무엇을 읽고 쓰며 나긋한 나날을 보냈을까.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는, 그의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Q. 서강대학교 불문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작가님께 그 시절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서강대학교는 제가 불문학을 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곳입니다. 학부 시절에는 불어 자체를 배우는 수업이 주를 이루다 보니 문학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습니다. 문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다가, 서강대학교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부족하나마 불문학 연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지금은 불문학 연구보다는 집필에 집중하고 있지만, 불문학을 배웠던 시간이 제 소설쓰기의 중요한 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모로 지치고 힘든 시기입니다. 작가님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온기를 주는 것처럼, 작가님을 지치지 않게 하는 것, 온기를 주는 것이 있을까요?

 첫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봄부터 연재 예정인데요. 잘 써지지가 않아 무척 마음 고생이 많은 날들입니다. 저에게 온기를 주는 것은 함께 사는 강아지 봉봉이에요. 이제는 나이도 많고 자주 아프지만 봉봉은 여전히 내게 온기를 주는 존재라 봉봉이의 사료와 약값을 벌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고 날마다 생각합니다.(웃음)

  

  

 백수린의 단편 「여름의 빌라」는 주인공 주아가 자신의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주아는 친구의 손녀 레오니와 함께 캄보디아 길거리를 산책하던 시간을 회상한다. 레오니는 '원숭이님의 집'이라며 땅바닥에 자신과 주아를 둘러싼 네모를 그린다. 네모 밖에서 한 캄보디아 어린이가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이어지는 문장은 소설의 핵심이자, 백수린 시선의 집약체다.

  

  캄보디아 소년 앞에 섰던 레오니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의 발로 레오니와 소년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우는 게 아니겠어요? 레오니는 돌멩이 끝으로 소년의 뒤쪽에 새로운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새 친구가 왔으니 원숭이님이 더 좋아하겠지?" 하고 나에게 말을 했어요.

(「여름의 빌라」, 『여름의 빌라』 71쪽)

  

  

 금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를 한 뼘씩 확장하는 일. 그 작은 분투 속에서 독자는 희미한 빛줄기 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백수린의 인물들은 금방 깨질 것마냥 외롭고 조심스럽지만,, 그 아래에는 깨어지지 않을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토록 섬세한 백수린의 다정 안에서라면, 누구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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