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소설을 위한,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줄타기. 심재천(경제 96) 작가를 만나다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0.12.17 15:46:27
조회 1,689



  

 심재천 동문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세계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작가가 됐다. 2011년 '나의 토익 만점 수기'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다음해에는 제1회 EBS라디오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9년 소설 '젠틀맨'을 출간하고 현재는 가평 한적한 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서강가젯이 들어봤다.

  

  

본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심재천 동문(경제 96). 중앙일보 제공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소설가 심재천입니다. 1996년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셨나요?


 경제학도였지만 경제학에는 소질이 별로 없었습니다. 상경계열 지망은 아무래도 부모님 뜻이 컸습니다. 점차 제 적성을 찾아 인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문학, 국문학, 영화이론, 서양사, 철학 수업을 구경하듯 두루두루 들었어요. 경제학과이면서 맨날 X관에서 산다고 친구들이 많이들 놀렸습니다.
 경상대 단대 신문사 <경상누리>에서 신문을 만들기도 했어요. 취재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동문 선배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무척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꿈에 나옵니다.
 복학해서는 사진동아리 <서광회>에 들어갔죠. 출사를 나가고 암실에서 릴을 감고 인화를 하는 작업이 저한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복학생을 신입부원으로 받아준 <서광회> 선후배들에게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시다 2011년 장편 '나의 토익 만점 수기'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셨더군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간지 기자 생활은 4년 정도 했습니다. 폭넓고 활동적인 저널리스트 일은 견문을 넓히는 데 매우 유익했습니다. 슬렁슬렁 서울의 경찰서를 돌아다니는 수습기자 생활도 흥미로웠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소중했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기자는 무조건 말술을 마셔야 해서 몸이 무척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문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작가가 된 계기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20대 때에는 되고 싶은 것도 많아, 소설가, 신문기자, 영화감독, 록밴드 리더, 아르헨티나의 양치기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맞춰 조금씩 필요한 기예를 익히고 정보를 쌓아가다가 결국 걸려든 게 신문기자였고 소설가였습니다. 그저 멋있어 보였어요. 재미있어 보였고, 인생을 걸어볼 만했습니다. 그래서 동경했습니다. 내 손으로 꼭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 심재천 동문(경제 96). 한겨례출판 제공 ⓒ 이해수

  

  

데뷔 당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셨어요. 그 이듬해에는 문학상 본심에서 떨어진 작품들을 모아 소설집 '본심'을 펴내시기도 하셨는데요. 작가님께 문학상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상금 받아서 잘 썼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것 정도 말고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CPA 시험을 통과하면 공인회계사가 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직을 평생 유지합니다. 하지만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가 타이틀이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닙니다. 그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춘문예나 공모전으로 힘들게 데뷔하고도 그냥 가뭇없이 사라지는 작가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작가는 매번 책을 낼 때마다 세간의 평가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잊혀지기도 하고,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과거에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기서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커나 치트키로 쓸 수 없습니다. 작가의 세계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매년 수능을 치르는 것 같은 특이한 세계인 것 같아요.

  

  

두 번째 장편인 '젠틀맨'은 청량리 뒷골목 생활을 이어가던 한 남자가 우연한 계기로 명문대 대학생이 된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이러한 소재로 소설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책을 쓰시며 주로 어느 곳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저 역시도 20대 대학생으로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일들이라 공감이 잘 되더라고요.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대학 졸업 후 호주를 여행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휘휘 버무려 쓴 장편소설입니다. 그때 진짜 특이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그런 만큼 체력 소모가 컸지만 회사에 몸이 묶여 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엿보았습니다. 덕분에 첫 장편이었음에도 재미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젠틀맨』은 『나의 토익 만점 수기』가 너무 가볍다는 평이 있어서, 그 꼬리표를 떼어 보고자 힘을 잔뜩 주고 쓴 작품입니다. 바라던 대로 괴물 같은 소설이 나왔지만, 세상이 바뀌어 더 이상 괴물을 원하지 않는 시대가 되고 말았네요. 힐링과 위로의 시대에 괴물을 내놓았습니다. 이러이러한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아직 제가 커리어에 정점을 찍진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몸부림치면서 씁니다. 쫓기듯, 긴장하면서, 때로는 쭈뼛쭈뼛 무서워하면서, 약간 허둥지둥하면서, 매일 조금씩 써나갑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최근엔 웹소설 『김비서가 왜 이럴까』를 읽었습니다. 비록 다른 일정에 쫓겨 끝까지 읽진 못했지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하고 있는 처지라, 염탐해야 할 분야도 많군요.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제대로 문학 수업을 받은 적도 없어서 저는 독서량이 일천합니다. 사실 여러분께 책을 추천할 정도의 수준은 못 됩니다. 그러나 굳이 한 권 꼽으라고 하면, 그냥 문득,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떠오르네요. 그저 조용히 제목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뭉클해지는군요.

  


▲ 심재천 동문(경제 96). 중앙일보 제공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요즘 양배추 초절임을 만들어보고 있는데, 식초, 설탕, 소금의 이상적인 배합을 발견해 정말 상큼한 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냥 먹어도 아삭하니 맛있고, 닭고기에도, 생선구이에도 잘 어울리는군요. 그런 소설을 썼으면 합니다. 간단히 슥슥 만든 거 같은데 자꾸 먹고 싶고, 소박하면서도 싱싱하고, 오래 가면서도 맛은 또 상큼한. 누구나 좋아하는.

  

  

'젠틀맨'을 내신 지 1년이 지났는데요. 그 동안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인터뷰를 보실 서강 가족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려요.


 가평 한적한 곳에 살고 있기에 글을 쓰고 있지 않으면 산에 오르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여름이면 마당의 잡초를 뽑고, 겨울이면 장작을 팹니다. 가끔 마주치는 동네 주민분은 “잣을 좀 주워 보지 그래? 주워서 공판장에 팔면 돈이 꽤 된다구” 말씀해 주시지만 아무래도 잣을 주울 시간은 나지 않는군요.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서강대에 다니면서 뛰어난 재능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늘 감탄했지만 신기하게도 질투심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에게 서강은 그런 곳입니다. 캠퍼스에서 오며 가며 마주쳤을 그 시절의 모든 인연에게, “잘 지내고 있지요?” 인사를 전합니다.

  

  

 '간단히 슥슥 만든 거 같은데 자꾸 먹고 싶고, 소박하면서도 싱싱하고, 오래 가면서도 맛은 또 상큼한. 누구나 좋아하는.' 심재천 동문이 꿈꾸는 소설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지금껏 그가 펼쳐온 세계와는 비슷한 듯 다른 소설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란 점이다. 그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 형태가 어떠할지 기대된다. 심재천 동문의 앞날을 서강가젯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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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조광훈 2020.12.23 17:01
참 멋진 선배님이네요! 소설가 선배님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알게되어 너무 기쁩니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 너무 재밌게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