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기적을 담아내는 감독, 윤가은 동문 (사학 00)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1.29 11:46:34
조회 2,686


   




▲ 윤가은 동문 (사학 00) / 영화감독


제작비 1억 5천만원, 무명 아역배우, 신인 감독의 첫 장편영화.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 <우리들>은 전 세계 32개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그 진가를 알렸다. 잔잔하지만 섬세한 이야기에 5만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고, 감독은 부일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 이어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또 다른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윤 동문의 가치관과 꿈을 서강가젯이 들어봤다.



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강에서의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윤 동문 : 개인적으로 학교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중고 때 느끼지 못한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었구요. 과 활동보다는 동아리 활동(서강연극회)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때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있습니다. 연극 연습을 위해 방학에도 항상 학교에 가곤 했어요. 지금도 독후감을 쓰나? (웃음) 그런 것이 다 새로웠습니다. 서강은 제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영화감독의 길은 언제 생각하게 되었나요?


윤 동문 : 중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고, 인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서강대에 들어왔습니다. 졸업 이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서 전문사 과정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공부를 시작했구요.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감독이 직접 경험한 게 아니면 쓸 수 없겠다’ 생각한 부분이 종종 있었습니다. 감정선이나 대사들이 너무 진짜처럼 느껴졌구요. 영화에 자신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많이 담아내는 편인가요?


윤 동문 : 어릴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겪었던 많은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작품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들>이라는 영화는 내가 어린 시절에 느낀 여러 고충이 녹아 있어요. 개인사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던 경험이 있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에서 풀어내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 작품이 됐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사적인 경험이 훨씬 잘 드러나 있기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의 아역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고 연기를 시켰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윤 동문 : 단편영화를 하면서 아이들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대본을 정확하게 주면 아이들이 텍스트에 매몰되더라구요. 고정된 이후에는 디렉션으로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글자 없이 하게 하면 어떨까?’ 해서 대본을 최소화 했습니다. 머릿속 구상과 아이들의 연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상황을 설정하고 연극 연습하듯이 계속 주고받았어요. 그런 리허설을 2~3개월 동안 반복했구요.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든 장면을 말로 설명해주고, 정말 급한 건 전날 쪽대본으로 줬습니다. 아이들이 텍스트에 구속되기보다는 자기 말로 표현하길 원했거든요.




▲ (왼쪽부터)윤가은 감독의 <콩나물>, <우리들>, <손님>의 포스터



<콩나물>에서 할아버지 제삿날 첫 심부름을 떠나는 아이, <우리들>에서 전학을 오는 지아와 또래 아이들 간의 주도권 다툼, <손님>에서 아빠와 불륜관계인 여성의 집에 찾아갔다가 어린아이들과 맞닥뜨리는 상황 같은 소재들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영감을 받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윤 동문 : 영감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번뜩이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만들어 내는 편입니다. 이야기의 실마리나 비슷한 게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하구요. 쭉 쌓아 놓은 메모들이 이리저리 조합돼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전적인 경험 절반과 적어 둔 메모들 절반을 합쳐서 만들어냅니다. 하루 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고민의 결과인거 같아요. 전의 작품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들>이전에 아이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문뜩 아이들이 한 곳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 욕구가 <우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윤 동문의 영화는 주로 '다양성' 영화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여성, 어린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비상업적으로 소비된다는 말인데, 그런데도 꾸준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윤 동문 : 이건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고민이었고 지금도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런 이야기만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진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내 안에 상업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내가 있지만, 단지 좀 더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었고, 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번 선택은 그런 측면에서 나에게 쉬운 선택이었습니다. 주위에서 상업성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줘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계속 있지만, 이걸 지속가능한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구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합당한 직업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여성 영화감독을 다룬 특집 기사에서 윤 동문을 봤습니다. 기사 제목이 아름다운 ‘생존’이더라요? 여성으로서 그 워딩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영화산업에서 여성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또 힘이 되어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윤 동문 : 스스로 여성 감독으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인지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데, 그런 것이 사회의 기준과 부딪힐 때면 깨닫곤 해요. 영화감독을 꿈꿀 때는 잘 몰랐습니다. 업계에 들어와서 보니 안팎으로 부딪히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내가 여자라서 이런가?’ 싶은 문제들과 맞닥트리게 되는데, 그건 사실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위 모든 여자 친구들이 겪고 있는 문제예요. 어떤 분야든 여성은 생존하며 살아가더라는 걸 느낍니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투쟁 아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럴 때면 여자 선배님들을 자주 찾아봬요. 동종업계뿐만 아니라 주위 친구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다른 업계고, 다른 문제인데도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접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비합리적인 구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결국 주위에서 힘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조금 궁극적인 질문일 수 있는데, 윤 동문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윤 동문이 만든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좋을까요?


윤 동문 :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감독마다 전부 다른 이유로 영화를 하곤해요. 나의 경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힘들었던 그 시절 봤던 영화들이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됐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나의 이상함이나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이상함이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그런 역할을 다양한 매체가 해내지만, 나에게는 영화가 그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든, ‘사람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 시상식에서 송강호 선배가 “나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 말을 듣고 펑펑 운 적이 있어요. 순진할지는 모르지만 나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나봐요. 내 영화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영향을 미친다고 믿습니다.



서강대 출신 감독들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영화감독을 꿈꾸는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 동문 :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제작사, 배급사까지 서강대 출신이 정말 많습니다. 스스로도 서강대 나온 덕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동문 간의 끈끈함 이런 게 아니라, 서강대에서 훈련받은 성실함이 어디 안 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경험한 서강대 학부는 스스로 공부하는 ‘자립형 인간’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스스로 공부했던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실 영화의 변방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아주 불안한 일이고, 끝없는 의심과 싸워야 하는 길이에요. 하지만, 가다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도 놀랍고, 영화과 출신이 아님에도 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나는 항상 맞는 길을 가는 것인지 많이 불안해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어내도 될거 같아요. 이건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이든 아니든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중요해요. 망해도 괜찮습니다. 실패하는 만큼 다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요.

 

윤가은 동문의 영화에서는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무엇이 좋은 영화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녀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있다. 여전히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 순수함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윤가은 동문의 차기작 <우리집>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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