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에서 피어난 연꽃, 박청환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작성자 서강뉴스Weekly
작성일 2017.10.27 15: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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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에서 피어난 연꽃,

박청환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서강대학교가 예수회 이념 하에 세워진 예수회 학교이지만, 다른 종교재단 학교들과는 달리 종교 관련 수업을 필수로 두지 않고 있다. 서강인의 폭 넓은 사회 진출은 바로 이런 자유로운 학풍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호 <서강을 만나다>에서는 졸업 후 출가를 하고 2017년 2학기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로 임용된 박청환(정덕 스님)동문을 만나보았다.


 서강이라는 예수회 학교에서 출가를 하시게 된 과정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불교를 공부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서강대 불문과 81학번으로 입학을 했어요. 학부 다닐 때는 특별한 뜻은 없었지요.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책 읽기 좋아해서 문과로 진학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에 매진하기보단 잘 놀았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에 가까웠지요.


 출가를 생각한 것도 특별한 계기는 아니었어요. 졸업 이후에도 흘러가는 대로 살았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에 취직을 하는 등 이러한 흐름 말이에요. 그렇게 다들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거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도 없었지요. 그러다가 서른 즈음 되니까, “내 인생이 잘 가고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마침 우연히 인도를 오래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계기라면 계기가 되었지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일 년 가까이 여행을 했어요. 인도에서 한국 스님을 만났는데, 그 분께서 출가를 권유하셨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시면서 출가를 해도 잘 할 것 같다고도 말씀을 하셨지요. 그 후에 한국에 왔는데 사회생활 할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절에 “한 번 가보자”란 마음으로 갔었는데, 그 생활이 잘 맞아서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인도 여행이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흘러가는 삶의 흐름을 한 번 멈춰버린 것이니까요. 일상 생활에 묻혀 살다 보면 흐름 자체를 바꾼다거나 멈추기가 어렵잖아요.


 출가를 생각하시고 어디서 수학을 하셨는지, 또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른 즈음 출가를 했으니까, 절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보통 출가한다고 큰 절에 가면 행자기간이라는 예비 기간이 있지요. 절에서도 그렇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스님이 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간이 6개월 정도 있어요. 본인의 의사도 있고, 절에서 검증할 때도 맞겠다 싶으면 그 이후에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6개월 사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가요(웃음). 그때는 예불을 하고, 청소하고, 공양해서 밥도 지으며 절의 생활을 익히는 기간입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것이 여간 바쁜 일이 아니지요. 이 6개월의 행자 기간을 거친 다음엔 ‘사미계’를 받아요. 예비자가 될 자격을 부여 받는 것이고, 그때부터 정식 교육을 받는 것이지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오거나, 신학교인 중앙승가대를 가거나, 전국 20여곳 정도 큰 절들이 있는데 여기 있는 승가대학을 선택할 수 있어요. 기본교육기간이 4년인데, 이걸 이수하면 정식 스님이 되는 거지요.


 여러 선택지 중에서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교육 이후에는 길이 다양해요. 절에서 공부하겠다는 분과 학교로 오시는 분도 있어요. 4년 동안 교리를 공부할 수도 있고, 선원에서 명상 위주로 할 수도 있지요. 자기 맞는 걸로 찾아가는 것이에요.

 저는 불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들어왔어요. 석사과정 때는 불교 지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것을 공부할까” 하는 탐색 과정이었어요. 여기서 3년을 공부했고, 그러다 기회가 있어 영국 옥스퍼드에 갈 기회가 생겼지요. 여기서 불전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이쪽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불교공부도 그 안에 보면 교리적인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래 동화처럼 이야기, 설화에 대한 내용들도 많아요. 부처님 탄생설화에도 판본이 다양해요. 이런 것들이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이 왜 다른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이야기 저변에 깔려있는 배경들을 연구하기도 해요. 우리나라만 봐도 지명 등에 불교적 전통들이 숨어 있어요. 북한산만 가봐도 원효봉, 관음봉 등 불교 전설과 얽혀 있는 것들이 많지요.


 스님이 된 후에도 진로가 다양하네요.


 그렇지요. 참선을 위주로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절에 들어가 주지 소임을 보시는 스님들도 있어요. 이런 분들은 수행을 위주로 하시는 분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신도들과 만나야 하고, 절의 행정도 담당해야 하지요. 스님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일을 하진 않아요. 저 같은 경우 거의 학교에 있으니까 신도들을 만날 기회는 적어요. 의외로 출가했는데 절에 가 볼 기회도 없어요.


 이제 ‘불교학부 교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종교단체를 재단으로 두고 있는 한국 대학교들이 많고, 대부분 종교 수업을 필수로 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보면 학생들이 종교 수업을 지루하다고 느낄 것 같긴 해요. 한창 놀러 다닐 친구들인데, 거기에 “인생은 고(苦)다!” 하면 머리에 들어오겠어요? 나이가 좀 들고 어느 정도 본인의 경험이 축적된 사람들에게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요. 아직 갈 길이 먼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교과서적이고, 와 닿지가 않지요.


 일반적으로 불교가 종교보다 철학적 색채를 강하게 띄는 것으로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불교가 꼭 철학적이지만은 않아요. 학교에서는 불교를 철학적으로 따지지만 절에 가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요. 현실적인 종교의 불교와 학교 철학의 불교가 괴리감이 있어요. 불교를 철학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종교라는 것이 신앙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아요. 마음 공부가 중요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가면서 신앙적인 것 보다 마음공부, 명상을 위주로 전해졌는데, 이런 경향이 한국으로 역수입된 상황이에요. 그래서 1학년 학생들 보면 불만이 많은 학생들도 많아요. 얼마 전엔 은행에 가서 야단을 맞기도 했어요. 자기가 이 학교를 나왔는데, 불교 수업이 제일 재미 없었다고요.

 예전처럼 ‘믿습니다’ 이런 것 보다는 종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시대지요. 종교가 한 사회를 이끌던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는 어떤 강의를 하고 계신가요. 특별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대학원 강의 하나, 학부 강의 하나 하고 있어요. 둘 다 전공 수업이에요. 학부 수업은 ‘위빠사나 이해의 실천’이란 것인데, 초기 명상 테크닉에 대해 배우는 것이에요. 그 것이 인도에서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텍스트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지요.

 강의에 있어 특별히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향해요. 선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주는 수업은 재미가 없어요. 대학에서 상당수의 개론과목도 굳이 선생 혼자 떠들 필요가 없어요. 학생들이 혼자서 읽고 이해 못 한 것은 와서 물어보면 되는 것이지요. 영국에서는 다음 시간 수업 범위를 지정해주면 학생들이 각자 해오고, 수업시간에는 이해 못 한 것들을 질문하는 방식이에요. 수업 들어오는 것도 자유예요. 시험에서 본인의 결과만 보이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방식 마다 장단은 있지만, 대학은 연구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일방적인 강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학생들의 연구 능력이 강화되어야 하고, 선생은 그게 옳은지 그른지 토론을 통해 알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매번 선생만 떠들어서는 4년 공부 해 봐야 학문적 소양이 늘지 않아요.


 평소 학생들이 상담 요청도 많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서강 동문과 학우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올해는 상담이 잘 오지 않네요. 저는 무언가를 말하기보단 얘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해요. 단기적인 명확한 처방을 주기 힘드니까 어떤 상황인지 일단 듣는 것이지요. 불교적으로 치유하는 것은 없고, 자기 흐름을 찾으라고 주문을 해요. 직장 취직해서 경쟁적으로 살고 인정 받으면 좋지요. 그렇다고 생각없이 대세에 같이 흘러 가서는 안돼요.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자기가 선택한 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으면 남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나를 찾고 내 시대를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쉽지는 않지만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한 번 던져보는 것도 필요해요. 다른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자기 가는 길의 가치를 발견해야 덜 힘들어요.

 여러 명언들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요. 경전 말씀 중에 좋은 말도 있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좋은 말이라도 남의 얘기는 남의 것이라서, 개인적으로 보면 와 닿지도 않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요. 내가 처한 상황과 같은 맥락이 아니니까요. 당면한 문제의 답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가 찾아보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남의 얘기를 한 번 듣고 풀 수 있는 고민은 고민이 아니에요.

 종교든, 전공 공부든 세상에 하면 좋은 일은 많아요. 중요한 것은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요. 좋은 일이라고 벌려 놓았다가 감당할 수 없으면 그건 또 행복한 것이 아니에요. 감당할 만큼을 넘어서는 것은 자학이지요. ‘사명감’을 주문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있든 그게 내 범위를 넘어가면 그 바닥에서 나와야지요. 어디에 있어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유익함이 많아야 해요. 저도 부침이야 있었지만 이 생활이 큰 틀에서 봤을 때 유익함이 많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 것이에요. 단, 그 기준은 부모님이나 친구가 판단해줄 수 없어요. 주관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본인이 만족하면 거기 있는 것이고, 불행하면 있을 필요가 없지요. 타인 때문에 마지 못해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가치가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뭔가를 찾아보려 씨를 뿌리던 시기에 서강에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 박청환 동문은 서강이 준 가르침과 인연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동문들이 ‘항상 잘 되기를’ 기원했다. 박청환 동문의 말이 자신의 가치가 어느 곳을 지향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울림이 되길 바란다.



 글   | 윤상진 (학생기자, 사학 15) dhkqjs@sogang.ac.kr

 사진 | 이주영 (학생기자, 수학 15) jenny3544@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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