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평범하게 누려야 하는 행복에 대하여, 다소니 학생 인터뷰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6.04 1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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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팅을 외치는 박진철(사학16) 학생

시간이 갈수록, 이 세상이 점점 ‘긍정하기 힘든 곳’이 되어 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너무도 말이 되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발생하고 있으며, 사건과 사고는 끝이 없고, 개개인의 일상도 벅차고 힘든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연 아름다운 곳이긴 할까?

 

그렇다, 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서강의 두 재학생이 있다. 박진철(사학16) 학생과 김예진(가명) 학생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학우는 청각 장애를, 한 학우는 다리의 장애를 안고 있다. 그러나 장애란 그들의 일상에서 너무나 작은 부분일 뿐, 행복을 찾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차게 행복하다, 고 말했다. 건강한 신체로도 때로는 도저히 긍정하기 힘든 이 사회 속에서 ‘행복’을 말하는 그들은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의 생각과 시선에 대해 물었다.


‘그럼에도’ 긍정할 수 있는 견고함을 지닌 학생들이었다. 가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성숙함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우리’로서 함께 살아가는 데 아직도 너무나 서툰 사회에 대해서도 말했다. 프레임과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들로 인해 겪는 상처들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던, ‘장애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들었다.

 

# 요즘의 이야기, 나의 일상
 

학교를 다니고, 과제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작은 도전들, 매일의 고민에 대해 물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두 학우의 하루하루는 어떤 삶일까?

Q.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즘의 일상에 대해 먼저 여쭙고 싶어요!

진철) 요즘엔 동아리를 많이 해요. 미식축구 동아리를 하는데, 즐겁고 건강한 활기를 얻어요. 처음에는 동아리 구성원이 다 19학번 새내기 친구들이어서 들어갈지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들어가길 참 잘한 것 같아요. 저로 인해서 다른 학번 사람들도 들어오게 되었거든요. 동생들과 많이 친해져서 즐겁게 운동도 많이 하고 대회도 나가면서 활기를 얻고 있어요. 대학생 때 아니면 못 해볼 경험인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예진) 저도 동아리를 아주 벅차게… 하고 있어요(웃음). 작년부터 하던 동아리가 올해부터는 할 일이 더 많아져서 바쁘지만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할 만한 것 같아서 욕심껏 동아리를 한 개 더 들었는데, 보람차긴 하지만 할 일이 많아 바빠요! 거기다 학과 공부와 과제가 많아서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됐고요.


Q. 다들 즐거운 취미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올해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요?

진철)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새내기 때는 자전거로 강원도까지 달려 갔다 온 적도 있어요. 고속도로를 자전거로 혼자서 미친 듯이 달렸어요(웃음). 이번에도 중간고사 끝나고 충북 보은까지 내려가서 미식축구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정말 즐겁더라고요. 운동이 즐거워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예진) 올해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요! 항상 미니어처 만들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손재주가 없어서 그동안 도전하지 못했거든요. 미니 집 구조 만드는 것, 이번 방학에는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또 중국어나, 스페인어 같은 언어도 배워 보고 싶어요.


▲ (좌)혼자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에 갔을 때의 박진철 학생, (우)미식축구 동아리의 활동 모습


# 과거의 이야기, 지나온 나의 삶
 

평범했던 지난 삶과 장애를 가지게 된 후의 조금은 특별한 삶까지… 지난 그들 삶의 이야기와 감정들에 대해 물었다. 두 학우의 현재를 만든,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듣는 시간.

#1. 빛나는 꿈을 지녔던 아이

진철)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일기를 다 보관하고 있어요. 정말 어릴 때 썼던 일기를 봤는데, 빵집 아저씨라고 적어 놓은 거예요. 뭔가를 만드는 걸 꿈꿨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예술계에서 일하시는데, 아마도 그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도 치고, 레고나 우드락으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저 귀엽네요.

 

예진) 어릴 때는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가르치는 게 재밌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걸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보람 있었거든요. 심지어 고3 때까지도 저, 생활기록부에 꿈이 교사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서... (웃음) 서강대에 교육학과가 1전공으로는 없어서 지원을 못했던 건데,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전공이 제 진로와 적성에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해요.

#2. 다소 갑작스러웠던, 장애의 시작

Q. 장애를 언제부터, 어떻게 가지게 되신 건가요? 어떻게 시작되신 건지 여쭙고 싶고, 그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진)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 3 수능 원서 쓸 때쯤부터인가, 저는 일자로 걷는다고 걷는데도 약간씩 휘청휘청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계속 앉아서 공부만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을 했죠. 그런데 갈수록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단순한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워낙 확신하셨고 다른 치료는 받을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큰 병원이니까 믿기도 했고요. 워낙 수능이 코앞이었으니까 일단은 수능을 보고 집에서 많이 쉬었어요. 그런데도 좋아지진 않더라고요. 3월은 계속 다가오고, 대학에는 가야 하니까, 근처에 큰 재활 병원에 갔어요. 거기서는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휴학을 결정하고, 계속 검사를 받고 재활을 받았죠. 아직도 원인은 확실히는 몰라요.

 

진철) 5-6살 때부터 후천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요. 원인은 아무도 모르고, 아직도 저도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갑자기, 이렇게 되었더라고요. 음... 미약하지만 제가 추측하고 있는 원인이 있다면, 어릴 때 제가 몸이 안 좋아서 할머니 댁에서 살았거든요. 그때 할머니께서 마시던 믹스커피를 3-4살 어린 나이 때부터 마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직도 원인은 명확하지 않아요.

Q.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예진) 저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있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으니 처음에는 현실 부정도 했어요. 이건 내 삶이 아닐 거다, 곧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무작정 이렇게 생각했어요. 곧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거야 생각했고..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일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인데. 하면서 끝없이 원망도 했죠.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고,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친구들과 대학 가면 이런 것, 저런 것 다 하자 하면서 꿈꿨었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도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된 거예요. 인터넷이나 sns을 보면 친구들은 원하던 것 이루면서 살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나는 대학을 붙었는데도 왜 이렇게 병원에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들에 속상했죠.

 

진철) 저는 너무 어릴 때라 사실 그때의 감정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다만 이런 것들은 기억이 나죠. 점차 자라면서 느끼던 감정들? 뭔가 다르구나, 했던 느낌들. 어린 나이였지만 친구들이 고맙게도 모두 잘 배려하려고 노력해 주었어요. 한참 짓궂을 나이인데도요. 아 이런 적은 있었어요. 저는 보청기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 애들 한참 까불 때, 여름에 애들이 물총을 들고 왔는데 실수로 저한테 쏜 거에요. 그래서 결국 보청기를 수리 맡겨야 했었죠.

#3. 내 장애를 '긍정'하기까지, 그 기적 같은 성숙


Q. 절망스러운 마음을 극복하시는 데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어떤 것일까요? 특별히 도움을 받았던 분이 있나요?

예진) 가족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우울해하면 공감해 주면서, 그 감정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줬어요. 다리만 불편한 거지 다른 건 다 할 수 있다고, 다리 불편하다고 못하는 게 그렇게 많진 않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부모님께서 도와주셔서 저도 우울한 생각에 더 빠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병원에 재활 치료 선생님들께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주셨거든요. 1년 동안 쉬고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을 많이 다잡게 된 것 같아요.

 

진철) 가끔은 원망스러웠어요. 귀 때문에 못 하는 일이 생겼을 때,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왜 이런 장애를 가지게 됐을까.. 원망스러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까, 이런 생각들이 저한테 하나도 도움이 되지를 않더라고요. 어차피 이렇게 생각해 봤자 바뀌는 건 없고, 저만 괴로워지니까요. 그걸 깨달은 후로는 의식적으로 어떤 일이라도 깊게 고민하지 않으려 했어요.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게 긍정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좋아요. 귀가 불편해서 저는 오히려 얻는 게 많거든요. 귀 조금 불편하다고 음악 못 듣는 것도 아니고, 운동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연주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잃는 게 더 많다고 생각 안 해요. 아, 저는 시각장애인 학우랑 기숙사에 같이 살아서 자주 같이 다녔거든요. 그분이 동아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걸 한번 봤어요. 쇼팽의 <혁명>을 연주하셨었는데, 딱 시작하시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눈이 안 보이시는데도 정말 와… 완벽한 연주였어요.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앞이 안 보이니까 손가락으로 건반 위치를 감을 잡고 연주를 시작하시는데… 정말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존경하게 됐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의 장애가, 오히려 저의 특별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내면, 저는 훨씬 더 까리한(웃음)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까요.

                               

# 나의 장애, 나의 삶

 

장애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물었다. 어떤 불편함이 있을까? 또, 어떤 힘듦이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이 장애를 긍정하게 되기까지는 어떤 생각과 노력이 있었을까?

 

#1. 아주작은 불편함

Q.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힘들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면 어떤 때일까요? 일상에 제한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진) 통증은 딱히 없어서 아프진 않지만, 몸이 마음대로 잘 안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죠. 혼자서는 잘 걷지 못하는 게 아무래도 제일 불편해요.

 

휠체어를 타게 되니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극히 평범한 일반인의 삶과,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써 두 삶을 모두 살아 봤잖아요. 옛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당연히 계단으로 가면 됐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고, 또 턱이 있는 곳은 올라가지조차 못하니까요. 또 요즘에 가게에 무인주문기 있잖아요.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위에까지 잘 안 닿고 혼자서 주문하기 힘든 경우가 많더라고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편리한 것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들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많이 느껴요.

 

진철) 사실 저는 보청기를 끼고 살아간 지가 아주 오래 돼서 이제는 불편함도 많이 느끼지 못해요. 그래도 가끔 자각하게 될 때는 있죠. 저는 대화할 때 주로 상대의 입 모양을 보거든요. 입모양을 안 보면 백 프로 알아듣기 힘들어요. 이걸 ‘구화’라고 하는데, 소리와 입 모양을 같이 매치시키면서 파악하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요즘 미세먼지 많잖아요, 그래서 다들 마스크를 끼시는데 그러면 제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상황 설명을 하고 부탁하면 다들 잘 벗어 주시긴 하니까, 괜찮아요. 또 한국 영화 같은 건 자막이 안 나오잖아요. 배경 음악이랑 섞이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많아요. 음.. 또 에어팟을 쓰고 싶은데 보청기 때문에 못 쓰는 정도? 그 정도 불편함만 있어요. 여름에 바다나 수영장에 가면 친구들 목소리를 못 들어요. 물놀이하면 보청기를 빼야 하니까. 아, 그리고 제 동생만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웃음) 저도 동생처럼 음악을 틀어 놓고 샤워하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소소한 행복을 못 느끼는 것?

 

한번은 음식적 서빙 알바를 그만둬야 하기도 했어요. 가게가 바쁘니까 손님들 요구사항을 바로바로 캐치해야 하는데, 제가 그러지 못하고 자꾸 되물었거든요. 또 전화 많이 해야 하는 사무직도 힘들 거고.. 선택 폭이 좁아지는 거죠. 알바를 하더라도 주방에서 요리만 한다거나 컴퓨터 작업, 그런 쪽으로 한정이 되는 거예요. 부족하다 싶은 건 아직 없어요. 보청기가 너무 비싸서, 경제적 부담이 있는 것이나 항상 물이 안 들어가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 굳이 꼽자면 이런 점이 불편함이겠죠.

#2. 긍정으로 불편함을 끌어안는 법

Q.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말 힘드신 일이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하시는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힘들고 절망스러운 마음을 이겨내는 사고방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예진)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걱정이 많긴 해도 쉽게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우울할 때가 있긴 해도, 순간순간의 감정일 뿐이지 거기에 파묻히려고 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고난도 나름 빨리 떨쳐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오히려 이럴 때는 제가 평소에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깊이 생각해 봤자 변하지 않을 것들이니까요. 쉬면서 재활하던 1년 동안 많이 성장했죠. 평소에 했던 모든 고민들이, 그때 가서 보니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었더라고요. 생각의 방향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가진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됐고, 앞으로 어떤 일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진철) 저도 뭐든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굳이 행복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럼 또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강박이 될 것 같아서, 일단은 되는 대로 살다가 자연히 오는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면서 살아요. 그리고 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아 그래?’ 하고 넘기고. ‘아 그래? 그래!’ 하면서 뭐든 일을 넘겨 버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예전에 미식축구 경기를 하러 동아리원들과 충북에 갔거든요. 경기 끝나고 버스가 저희 없이 그냥 떠나버린 거예요. 계속 기다렸는데도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래? 그런가 보다’ 했죠. 동아리원들은 걱정돼서 동동거리는데, 사실 그냥 기다렸다 다음 버스 타면 되잖아요. 제가 뭐든 그냥 받아들이는 성격이어서 편한 것 같아요. 약간 흘러가는 대로, 자연인처럼? (웃음)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살게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방식이 몸에 체화된 것 같아요.

#3. 나의 장애, 나의 특별함

Q. 본인에게 장애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본인을 변화시켜 주었을까요?

예진) 저에게는 저를 성숙시킨 가장 큰 발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었거든요. 생각을 깊게 하지 않게 됐고,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세상을 더 대담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진철) 저에게 장애란, 또 다른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장애로 인해서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차밍 포인트고, 저는 이것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요. 말하자면, 나의 장애란 저에게 ‘스파이더맨 수트’에요. (웃음)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그러잖아요? ‘나는 수트 없으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이것(휴대폰 케이스)도 아이언맨 써요. 제 당당함의 포인트에요.


▲ 박진철 학우의 아이언맨 휴대폰 케이스와 골전도 이어폰


# 아픈 시선, 던져지는 폭력에 대하여

 

우리 대학은, 또 우리 사회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충분히 성숙한 사회일까? 성숙치 못한 사회 속에서 이들이 너무도 쉽게 노출되는 상처에 대해 물었다.

#1. 생각 없이 던지는 말, 그러나 큰 상처로 번지는 말

Q. 생각 없는 행동이나 말들로 대학 안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그럴 때 기분은 어떠신가요?

예진) 저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타입이라서 힘들거나 우울한 감정이 있어도 덮어 두는 편인데도, 가끔 생각 없는 말과 행동에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친하지도 않거나 아주 조금 친할 뿐인데도 막 물어볼 때 그래요. ‘휠체어는 왜 타는 거냐, 언제부터 탔냐, 언제까지 타야 하냐’ 등등...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겠지만, 저한테는 덮어 두었던 수많은 감정들을 다시 꺼내고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한없이 우울하게 만드는 질문들이거든요. 그리고 그들 딴에는 안부라고 생각하고 ‘점점 나아지고 있어?’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사실 이 장애가 쉽게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거의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장애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질문들에 ‘아~ 안 나아져’, ‘휠체어는 계속 타야 돼’, 이렇게 말하기가 또 싫은 거예요. 머리로는 알지만, 제가 그렇게 말해 버리면 진짜로 희망이 없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별로 좋아지고 있지 않아도 그냥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라고 말하거든요. 그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제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Q. 대학 밖에서도 생각 없고 무례한 말과 행동들을 경험하실 때가 있을까요?

예진) 길거리를 지나가면서도 가끔씩 아예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와서, ‘휠체어 왜 타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정말 저도 놀랐는데, 그런 사람들이 정말 있더라고요. 그리고 특히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는 ’ 아유.. 한참 땐데..’ 하고 혀를 차고 지나가실 때가 있어요. 솔직히 저도 이런 상황에 놓인 게 좋지는 않지만, 이렇다고 해서 제가 불행하게 사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제 나름대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주위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그렇게 동정을 툭 받으면 기분이 정말 나빠요. 평소에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그런 동정을 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불필요한 말은 속으로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죠. 그들 입장에서는 위로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전혀 위로는 안 되니까요. 제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사람이 돼 버리는 것 같아서, 정말 불쾌했어요.

 

진철) 저는 아직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건 온전히, 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아니라서일 뿐인 것 같아요.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에 그렇게 관대하지 않아요. 남들이 나를 똑같이 대하는 건, 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인이기 때문일 뿐이에요. 저 말고 다른 장애 학우들은 혐오 표현이라든지, 혐오 행동들을 정말 많이 경험할 거예요. 그래서 저도 숨기려는 게 아닌데도, 굳이 장애 사실을 말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요.

 

예진) 맞아요. 혐오 표현이 정말 속상하게 해요. 아무리 친구 사이에서는 아무 말이나 쓴다지만, 그런 혐오 표현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나갈 때도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들리잖아요. 안 좋은 걸 표현하기 위해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쓸 때 정말 속상했어요. 그 말 자체를 안 좋은 쪽으로 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물론 상처를 받고, 화도 나죠.

 

한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사람이, 친구랑 얘기하다가 “아, 앞머리 완전 장애인같이 잘렸어,”하더라고요. 제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그럴 때 정말 속상했어요. 생각 없이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어떻게 저런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지?’ 싶어 충격적이었어요. 혐오 표현은 정말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2.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배려들

Q. 누군가 이렇게 행동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나요? 도움이 필요할 때라든가, 배려가 필요할 때가 있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예진) 엘리베이터요. 저는 이걸 정말 꼭 타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데, 엘리베이터 때문에 늦거나 타지 못하면 속상할 때가 있어요. 물론 배려는 감사하게 받아야 하는 거고, 해주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거니까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럴 때는 속상하고 씁쓸하긴 하죠.

 

진철) 청각장애 입장에서는 조심해달라고 요청할 만한 게 별로 없긴 해요. 대화할 때 먼저 마스크를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물이 튀기는 것을 조심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대신 도움이 필요한 학우가 더 눈에 잘 띄더라고요. 작년에 다소니 학우들끼리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제가 더 도와드리기도 했어요. 고속도로에서 화장실 갈 때 시각장애 학우의 손을 잡고 가고... 도움이 필요한 학우가 눈에 잘 보인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서로 돕고 살면 좋잖아요.

 

예진) 가끔씩 길 가다가도 느껴요. 저는 보도블럭이 밑으로 내려간 곳이 있어야 횡단보도로 내려갈 수가 있는데, 가끔 그곳에 뭔가를 세워 놓는다거나 주차를 해 놓으시거든요. 그러면 그곳은 제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버려요. 그 사람들은 생각없이 하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통로를 막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3. 그래도 세상은 아직 따뜻한 곳이에요

Q. 그렇다면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도움이나 말들로 따뜻함을 느끼셨던 경우가 있으실까요?

예진) 사실 제가 이렇게 밝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 덕분이에요. 맨 처음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적응하기도 힘들었는데, 이후에 되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작년에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갔거든요. 패키지 여행에서 보통 버스로 다같이 이동하니까 빨리빨리 행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같이 여행하는 분들이 정말 가족처럼 대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여행 중에 어떤 건물에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 어떻게 가야 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같이 여행하던 분이 직접 그 넓은 건물을 1층까지 다 돌아다니시면서 엘리베이터를 찾아 주시는 거예요. 턱 오를 때도 계속 도와주시고, 여행 내내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아직 세상에는 그래도 참 따뜻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주위에서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진철) 저는 시스템에서 참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군대도 안 가고… (웃음) 나라에서 해 주는 게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경기도권에 한정되지만, 지하철 통행료가 무료예요. 그리고 공공기관 등에서 면제해 주거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혜택 받는 게 많아요. 감사하게 받고 있습니다.

# 나의 서강, 나의 자랑

 

다소니 학우에게 들은 서강은, 유일하고도 따뜻한 공동체였다. 사소한 배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대학은 다소니 학우를 위해 어떤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을까?

 

#1. 서강만의 따뜻함, 유일한 세세함

Q. 서강대를 다니면서, 서강대 장애학생 센터에서 받는 도움이 있을까요? 어떤 것이 지원 프로그램의 장점일까요?

예진) 사실 제가 서강대를 선택한 건 딱히 이유가 없었고, 똑같이 입시 전쟁을 뚫고 들어온 학교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서강이 아니었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서강대여서 가능한 것들이 많아요. 다른 학교 같은 경우는 장애학생을 위한 시설이 우리처럼 잘 돼있지 않아요. 장애학생지원센터 정현희 부장님께서도 정말 신경 많이 써 주시고, 장애학생을 위한 제도가 정말 잘 돼 있어요. 옆 학교에 놀러 갔었는데, 그곳에는 턱이 있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학교 학생들은 참 힘들겠다, 싶었어요. 이동 도우미 시스템도 정말 잘 돼있고, 기숙사 우선권도 주시는데, 기숙사에 휠체어 방이 따로 있어요. 방에 턱이 없고 화장실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등, 시스템이 잘 돼 있어요. 서강동문장학회에서 기숙사비도 지원해 주시고, 장학금도 많이 주시고요. 특히나, 사소한 것까지도 많이 신경 써 주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계단식 강의실에 배정받으면 제가 다니기가 힘들거든요. 이럴 때 말씀드리면 바로 강의실을 바꿔 주시거나 간이 책상을 따로 놓아주세요. 학교 오기 전에 정말 걱정이 많았거든요. ‘학교에 언덕이 많다는데, 혼자서 잘 다닐 수 있을까?’ 하면서 혼자서 걱정이 많았었는데, 다행히 서강이라서 잘 다닐 수 있는 것 같아요.

 

진철) 저희 학교만큼 장애학생 복지를 잘해주는 학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학교를 본 적은 없지만 최고라고 생각해요. 일단 센터장님이 굉장히 친절하게 도와주세요. 어떤 지원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곳 같아서 믿음이 가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작은 것부터 말씀드리면, 일단 수강신청이 도움이 돼요. 메일을 보내면 원하는 수업을 무조건 들을 수 있게 해주시거든요. 다소니 학우를 위한 휴게실도 따로 있고요. 다른 장애 학우분들 같은 경우에는 대필 도우미라고 해서 수업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도 있는데, 다들 도움이 많이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2. 나에게 서강이란, 감사하고 따뜻한 곳

Q. 그럼 본인에게 서강이란 어떤 곳일까요?

진철) 저에게 서강이란, 그야말로 많은 감정이 들게 하는 곳이죠. 재밌고 힘들었던 일들이 많아요. 다같이 운동하고 먹는 삼겹살이라든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다같이 가는 피씨방이나… (웃음).

 

예진) 어떤 학교를 가 봐도, 우리 학교만큼 장애학생을 위한 시스템이 잘 돼 있는 학교가 없었어요. 모든 학생들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고민하는 학교 같아서 정말 감사한 곳이에요. 믿음이 가는 곳이구요. 항상 많이 지원해 주시고, 정말 최대한 편의를 봐 주시려고 노력해 주시는 게 느껴지니까요.

#3. 서강대 장애학생 지원, 이것만 나아진다면 좋겠어요!

Q. 그래도 혹시 서강대 장애학생 지원 프로그램이 이런 점만 나아지면 참 좋겠다, 싶은 것이 있을까요?

예진)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지만, 열람실의 입장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시험기간에 열람실을 갈 때면, 휠체어 통과로는 발권할 수가 없고 사람한테 연락을 해서 들어가야 하거든요. 막상 사람이 와서 열어 주시려면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고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가려는 건데, 그렇게 돼 있으니까 더 안 가게 돼요.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면 또 전화를 해서 열어 달라고 해야 하고... 휠체어 진입로도 학생증 등으로 자동으로 열리게 했으면 좋겠어요.

# 내가 꿈꾸는 세상에 대하여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아직 한참은 미성숙한 사회로 인해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는 그들. 모두가 ‘우리’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1. 누구나 당연하게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요

Q. 본인이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어떤 세상, 어떤 사회를 꿈꾸시나요?

예진) 누구나,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제약이 없는 세상,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 ‘거기는 턱이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요. 저는 정말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신촌이나 홍대에 있는 건물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야만 갈 수 있으니까, 친구가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매번 그런 걸 (시설들을) 찾아봐야 하거든요, 그럴 필요 없이 어딘가 가고 싶으면 당연하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진철) 저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요. 히말라야도 가보고 싶고. 정글 같은 오지에도 가보고 싶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하면서 돌아다녀 보고 싶거든요.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딜 가든 우산을 항상 챙겨 다니거든요. 보청기에 물이 들어가면 큰일이니까, 기상청을 안 믿어서 그냥 항상 들고 다녀요. 정글 갔을 때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려버리면 어쩌나.. 이런 생각은 하죠. 저는 세상에 긍정적인 방향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무엇을 하든 한번 사는 세상,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고 싶거든요. 자유롭게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 항상 만일에 대비해 우산을 들고 다니는 박진철 학생, 음악과 이승기를 좋아해요

 

#2. 무한한 가능성을 꿈 꿔요

Q.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루고 싶은 꿈이나 비전이 있으신가요?

예진)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저는 스페인을 정말 가고 싶은데, 주위에서 스페인 여행이 정말 좋았다고 많이 말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걸 보니 정말 좋아 보이더라고요. 유럽의 바닥이 거의 돌바닥이라고 해서 여행이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스페인이 도로가 나쁘지 않다고 많이들 말씀하셔서 꼭 가보고 싶어요.

 

진철) 연애? (웃음) 오지 탐험이나 험한 곳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정글 탐험이라든지... 몸으로 부딪히고 여행하면서 사진도 많이 남기고 싶어요.

#3. 미루지 마세요, 현재를 사랑하세요!

Q. 마지막으로. 오늘을 사는 서강 가족들에게 꼭 해주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예진) 엄마가 ’각자 자기만의 시계가 있다‘는 말을 해 주신 적이 있어요. 각자의 속도는 다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무 살 때는 이런 걸 해야 하고, 서른 살 때는 이런 걸 해야 하고.. 이런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페이스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제가 뒤처진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초라하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타인이랑 비교할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내 속도에 맞춰 살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철) 우리 앞으로 6, 70년을 더 살아야 되는데,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버티고 긍정적으로 즐겁게 살아냅시다. 하루 하루 다들 힘들게 사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것 아니잖아요? 이왕 살 거 우리 힘 냅시다! 더 큰 열매가 되어 돌아올 거예요. 정 안되겠다 싶으면 포기해도 되지만, 최대한 노력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단순하게 삽시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장애를 껴안고,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함을 지닌 그들에 비해. 사회는 아직도 한참 미성숙한 곳이었다. 그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누비기에는 사회가, 우리가 아직도 너무 부족했다. 또한 부족함을 느낀 것은 기자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습관적으로 상황을 비관하거나 고민하기 일쑤이던 필자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성숙한 이 사회도, 기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늘 고민하는 성숙함을 지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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