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고지도(古地圖) 박사, 장상훈 학예연구관(사학 87)을 만나다.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7.01 14:23:05
조회 1,446





▲ 고지도(古地圖)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상훈(사학 87) 동문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서 그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박물관에 가 보라는 말이 있다. 한 나라의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물관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나타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핵심인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그곳에서 고지도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는 장상훈(사학 87) 동문을 만나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생활과 서강 사학의 힘을 서강가젯이 자세히 알아보았다.


Q. 안녕하세요, 장상훈 동문님. 서강 가족분들께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려요.


네, 반갑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오신 걸 환영해요. 저는 1987년에 서강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고 1993년에 졸업한 이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장상훈이라고 합니다.


Q. 동문님께서는 처음부터 박물관에 진로 뜻이 있으셨던 건가요? 동문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아, 돌이켜보면 좀 신기한 일인데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하루짜리 근교 여행 붐이 일기 시작했었는데, 이따금 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사다 주신 엽서 크기의 사진집에 고적과 유물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요. 그 유물 사진에 조금씩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 관심이 조금씩 커졌고, 고등학교 때는 꽤 구체적으로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중고교를 다녔던 1980년대 전반은 유홍준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나오기 전이었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비슷한 성격의 책을 찾아봤는데, 그것이 한국일보사에서 펴낸 “한국의 여로”라는 관광 안내서 전집이었어요. 지역의 명소를 꼼꼼히 소개하는 책이다 보니 각 지역의 고적과 문화재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어서, 제겐 참 흥미로웠습니다. 입시 공부 이외의 시간에는 제법 열심히, 또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 그래서 대학 진학도 자연스럽게 관련 학과인 사학과로 정하게 됐고요.


Q. 서강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셨는데, 동문님이 생각하시는 서강 사학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서강대 사학과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일할 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여기서 배웠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중 으뜸이 '글쓰기'입니다. 글 쓰는 연습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제가 서강에서 공부하면서 점차 ‘말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웃음) 아마 좋은 글을 쓰는 건 인문학도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겠지만 저 같은 박물관인에게는 대중에게 전달할 여러 글을 쓰는 능력이 참 중요하답니다.



▲ 대동여지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장상훈 동문

Q.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하신 후에 매 순간이 학예연구관으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다고요.


네, 꽤 오랜 시간 박물관에서 근무한 터라 기뻤던 순간이 많습니다. 공을 들여 준비한 전시가 개막했을 때, 전시실에 오신 관객분들이 즐거운 눈빛으로 제 설명을 들으실 때, 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든 도록이나 문화재 자료집이 출간되었을 때, 멋진 지도를 구입해서 박물관 소장품으로 확보했을 때, 공을 들여 쓴 논문이 호평을 받았을 때, 한 자 한 자 꾸준히 번역한 한국 지도 개설서가 좋은 평을 받았을 때, 박물관에 쌓인 해묵은 문화재 관련 서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냈을 때, 문화재 수집가가 아끼던 문화재를 기증받았을 때, 그리고… 동료들과 격려와 사랑을 주고받을 때 ... 박물관에서 있었던 모든 순간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추억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물론 힘든 적도 많지만요. (웃음)


Q.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지도 전문가로 통하신다고 들었는데, 동문님이 특별히 고지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거의 자연발생적이어서 구체적인 계기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웃음) 어릴 때부터 사회 부도의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철도 노선을 베껴 그리면서 놀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보통 '지도'라고 하면 처음 가 보는 곳에 갈 때 길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실제 가보지 않으면서도 어떤 곳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쓰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세계지도를 보는 것이 꼭 세계여행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방에 앉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 장상훈 동문이 진행한 전시 '지도예찬'의 포스터 (출처 국립 중앙 박물관)

Q. 2018년 8월에 '지도예찬'이라는 전시를 기획하고 또 진행하셨는데, 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서강 가족분들께 잠시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전시회를 통해 동문님이 전하고 싶었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지도예찬 특별전'은 한국 전통지도의 참모습을 대중에게 소개한 전시였습니다. 한국 전통문화의 다양한 유산 중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도 분야를 집중 조명하는 뜻깊은 전시였죠. 260여 점이나 되는 지도와 지리지를 소개했고요. 유료전시였는데도 58,000여 명이나 다녀가셨고 전시 기간에 책도 2,300여 권이나 판매되어서 뿌듯했습니다. '조선지도 500년, 공간, 시간, 인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하고 많은 지도를 만들어 썼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도라는 것이,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는 매체인데, 사람들은 그 지도라는 매체 위에 공간에 대한 관점과 지식, 그리고 지향을 담습니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될 것이 '공간은 시간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의 산물이라는 거죠. 그런 점이 조선시대 지도에는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이해할 때 그곳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공간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닌 거죠. 그리고 지도 속엔 사람들의 다양한 희망과 기대, 바람, 욕망이 담깁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야기라는 거죠. 저는 이런 점들을 전시 속에 담아 관객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Q. 지도에 대한 동문님의 애착이 느껴지는데요, '지도 예찬'의 전시 중에 딱 하나 서강 가족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지도를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하나만 고르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요. 음.... 저는 모두 아는 대동여지도 말고, 우리 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시 때는 이 지도를 “영조가 보고 감탄한 정상기의 대형 전국지도”라고 소개했죠. 정상기가 없으면 김정호도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상기는 중요한 지도 제작자입니다. 김정호의 100년 선배랄까요? 동국대지도는 이전 시기의 지도를 크게 개선한 지도이고, 이후 대동여지도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지도입니다. 영조를 위해 비단 위에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린 지도이기도 하고요. 이 지도만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행정, 군사, 교통 등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지도의 세부를 관객들이 직접 보고 읽으실 수 있도록 <지도예찬> 특별전의 팜플렛을 전지로 만들고 한 면에 동국대지도를 실었습니다.

                 

Q. 동문님의 전시 경험을 듣고 있자니 학예연구직은 정말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요. 특정 문화재에 대한 조사부터 관련된 연구와 교육 업무까지 담당하는, 어찌 보면 많은 재능을 요구하는 직업인데 앞으로 학예연구직이 가져야 할 태도 혹은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동문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박물관을 “인류가 겪은 모든 경험의 물질적 증거를 모아 보관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수많은 증거를 파헤쳐서 역사상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는 일, 나아가 이것들을 지역사회, 더 넓게는 전 세계의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일이 박물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자료를 수집, 관리하고 이를 조사, 연구해서 전시와 교육 사업을 통해 대중과 공유하는 것이 박물관의 핵심 기능이고, 이러한 복잡다단한 일을 담당하는 것이 학예연구직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것은 자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봐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대중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Q. 질문이 많았는데 답변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이제 마지막 질문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동문님께 '박물관'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음... 질문을 받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가족과 몇몇 취미를 빼면, 저에게 박물관이란 '전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제가 가진 취미들도 박물관과 관련이 있을 때가 많답니다.(웃음)

 

장상훈 동문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여 87학번 입학 30주년 홈커밍데이 홍보분과장으로 활약하였고, 본 행사에서 1부 사회를 맡은 바도 있다. 서강가젯과는 이번이 두번째 인터뷰인데 이번에는 장상훈 동문의 본업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위주로 취재하였다.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서 역사의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에 연결하는 장상훈 동문을 서강가젯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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