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을 고민하는 세상을 위하여_인문학의 미래 #1: 이건희 학생(컴공 15) 인터뷰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6.17 13:48:30
조회 2,498


 



 

      


▲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건희(컴공 15) 학생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여러 진단이 있겠으나, ‘인문학이 사라지는 시대’ 라는 평가가 아프게 다가온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진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벅차게 매일을 사는 우리.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그만큼 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사라지고 있다. 가장 자유로운 학문의 공간, 가장 인문학적인 곳이어야 할 대학이 설 위치가 점점 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것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 인문학은 과연 실용적인 위치를 지킬 수 있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 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학생이 있다. 이건희(컴공 15) 학생이다. 그는 인문학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사람다워’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학과 중 하나인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도, 대학에서의 인문학 공부를 늘 꿈꿔왔다는 그. 서강 안에서 자유롭게 인문학을 할 수 있어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와 함께, 인문학의 현재 위치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시대에 대한 진단을 넘어, 실제적인 발전 방향까지도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뼛속까지 개발자였던 소년, 독서에 빠지다      

컴퓨터가 좋아 반대를 무릅쓰고까지 컴퓨터 고등학교에 진학, 밤을 새워 게임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던 소년. 그가 우연히 독서에 빠지고, 마침내 국문을 복수전공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었다. 컴퓨터밖에 모르던 소년이 독서광이 된 사연!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컴퓨터공학 전공과 함께, 국문학 복수전공까지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바쁘시겠어요.


네, 반갑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듣는 6개의 수업이 모두 전공 수업이라,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컴공 2개, 국문 4개를 듣고 있거든요. 그 외에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죠. 통학이 왕복 3시간이라 강제적으로 책을 읽게 되네요(웃음). 지금 집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서재도 정리하고 있어요. 책 모으는 게 취미거든요. 서재에 좋은 책들을 모으고, 다시 읽을 것들을 정리하기도 해요. 제게는 정말 소중한 공간이죠.



원래 컴퓨터공학 전공을 꿈꾸셨나요? 국문학 복수전공을 결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는 온라인게임에 푹 빠졌었는데, 어느 순간 게임을 즐기는 걸 넘어서 게임을 직접 만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에서 반대도 많이 했지만, 결국 컴퓨터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게임 개발 동아리 회장도 하고, 개발 대회에서 입상도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실력이 나쁘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컴퓨터가 정말 즐거웠어요. 고3 때까지 바로 개발 쪽의 취업도 고민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 진학을 결심했는데, 컴퓨터만 하다 보니 공부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기초가 전혀 안 되어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스트레스도 많았고, 제 안에 쌓여서 풀리지 않던 심적인 문제들이 참 많았어요. 스스로도 혼란이 많던 시기였죠.

 

그때 운 좋게 접하게 된 것이 하루키예요. 학교 도서관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읽게 됐거든요. 그때 정말 홀린 것처럼, 뭔가를 생각할 새도 없이 푹 빠져서 읽었어요. 처음으로 독서에 제대로 빠진 거죠. 그날 바로 집 앞 서점에 가서 10만 원어치 책을 사왔어요.(웃음) 어쨌든 일단 나는 이걸 읽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집에선 미쳤다고 했죠, 심지어 고3 여름 방학 때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책을 통해서 스스로의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최초의 경험이었던 거예요. 그때 운 좋게 하루키를 접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고민과 감정들을 분출하지 않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쿨하게 수용하고 해소해낼 수 있었어요. 말하자면, 초연해질 수 있었던 거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더 극적인 효과가 나기도 했겠지만서도요.

 

그때 책이 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분야를 탐독하게 됐고 대학에 가면 문학을 꼭 공부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리고 진학 후 기회가 되어 문학 수업을 몇 개 듣다 보니까 기대 이상으로 좋더라고요. 자연히 2학년 때 국문학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됐죠.



국문학 전공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왜 굳이? 등의 반대들이요.


아, 주변에서 다 말렸죠. 2016년 ‘알파고’ 이후 워낙 컴퓨터의 판이 커지기도 했고, 타과에서도 복수전공을 많이 올 정도로 컴공이 취업에 있어서는 걱정이 없는 편이잖아요. 컴퓨터가 현재 사회에서 워낙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주위에서 더더욱 이걸 어느 정도 포기하고 굳이 국문을 해야 하냐, 그것이 꼭 필요하냐,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심하게는 등록금을 날려먹는다는 얘기도 들었고요(웃음).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하는 주의이기도 하고, 더욱이 국문 전공은 제게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거든요. ‘아 이렇게도 작품을 읽을 수 있구나, 해석하고 수용할 수 있구나,’ 라고 다양한 사고의 폭을 배우는 게 대학에서가 아니면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나중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다양한 사고를 이해하면서 소통하는 능력이 필수적일 텐데, 국문 전공을 통해서 이것을 가장 잘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꿋꿋이 추진했고, 집에서는 이제 많이 지지해주고 계세요.



두 전공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살갗으로 다가오는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학문적인 것이든지, 현실적인 것이든지요.


무엇보다, ‘정해진 정답이 있는가’의 문제에서 차이를 느껴요. 컴퓨터공학은 기술적인 영역이다 보니까, 정해진 정답을 배우는 경우가 더 많죠. 주어진 지식을 먼저 이해한 후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연구할 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반면 인문학 전공이 좋았던 것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양쪽 다 말하자면 창의적인 영역이겠지만, 인문학 분야에서는 내 의견도 하나의 ‘학설’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내 의견도 동일하게 1/N의 비중을 가진다는 것, 그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시는, 열려 있는 태도가 느껴졌거든요.

 

더욱이 인문학을 배우면서, 저는 정말 스스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돼요. 제가 생각할 때 인문학은,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살기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로 ‘살기’ 위한, ‘잘’ 살기 위한 능력이요. 이걸 통해서 살아가는 데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 거죠. 국문 전공을 하면서는 ‘진짜 삶 자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 이건희 학생만의 소중한 공간인 서재와 독서 도구

 

# 고민이 있는 세상, 인간다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인문학이란 고민할 수 있는 힘, 특히나 소외받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려는 공감의 힘 이었다. 그걸 알게 된 후로는 1년만에 100권이 넘는 책을 탐독할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는 그를 매료시킨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인문학 전공을 통해 ‘잘 사는 법’을 고민하게 되셨다고 하셨어요.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조금 어려운 길, ‘반성하는 길’을 택하는 삶이요. 가장 쉬운 삶은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예요. 그럼 편하고 쉽죠. 그런데 그런 삶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일에서 어떤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는, 말하자면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과 동물을 차별화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이란 끊임없이 실패하고 실수하지만, 그를 통해 배울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존재예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인데, 물론 힘들고 때로는 아프기도 한 일이죠. 내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니까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저도 제 미숙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저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죠. 제가 잘하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아, 그럴 수 있지’ 하고 가볍게 넘기는 삶과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혹은 ‘다음에는 이렇게 할 수 있어야지’하고 마음을 다지는 삶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고민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럴 수 있는 힘을 인문학에서 얻죠.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인문학’에 대해 한 마디로 말씀해 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인문학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에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기 위해 쌓아온 노력들이 누적된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하면 아주 조금씩일지라도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에 다가갈 수 있어요. 어떤 책을 읽는다고 인간 행동과 감정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이해의 경지에 조금씩 다가가는 거죠.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면 인간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깊이가 더해질 수 있을 것이고,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제르미날>을 읽는다면 환경으로 인해 파국에 다다른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인간에 대해 배워 가는 거죠.

 

인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면… ‘생각하게 하는’ 것이겠죠. 사실 지금은 고민을 덜하는 시대잖아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중에서 정보는 제일 많은 시대인데, 그 정보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아요. 생각하지 않는 시대, 고민하지 않는 시대여서 사람들 안에 스스로 모순이 자주 생기는 거예요. 반면, 인문학의 대부분은 질문에서 시작해요. 특정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또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력의 질문들’의 모음이 인문학이거든요. 질문하는 능력이란 결국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고, 다시 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보 과잉 시대에서 올바른 정보를 찾아내고 분류해내는 능력은 중요한 거거든요, 그건 이 시대에서 오히려 그 중요성이 강화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문학이 오히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현실 속에서, 어떤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때 인문학을 통해 실제로 해결에 도달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요즘 정말 천착하고 있는 고민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근 몇 년간 큰 상실을 많이 겪었잖아요, ‘이것을 겪고 나서도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매여 있었어요.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요. 믿을 수 없지만 당면한 문제였고, 개인이 감당하기엔 거대한 상실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수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책을 통해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에 대한 다양한 답을 줬더라고요. 소설을 통해서든, 다른 여러 매체를 통해서든 많은 작가들이 답을 줬고, 그걸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죠.

 

‘인문학을 읽으면 삶이 나아진다'는 게 모두가 기대하는 것처럼 마법같이 딱 일어나는 일은 아니에요. 인문학과 삶은 때로는 정말 동떨어져 있기도 하고, 멀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인문학으로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아직 미숙하지만, 상처를 받았을 때 위로를 받는 측면에서는 도움을 정말 많이 받죠. 소설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 상황이 있고 어떤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족을 잃은 경험들, 다양한 상실의 경험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겪은 사람이, ‘과연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수많은 작가들이 대답한 것이 소설이에요. 그런 해답들을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도움을 받아요.


               


▲ 상처를 겪은 인간이,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요


# 인문학이 사라질 수 있는 시대를 고민하다

 

인문학이 외면받는 사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인문학은 '뒤처진 학문'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진단하는 현시대는 어떤 것일까? 이 시대, 인문학은 어떤 위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까?               


본인이 바라보는 현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인문학적으로 해결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혐오가 판치는’ 세상이요. 저는 이런 혐오의 만연이 아까 말씀드린, ‘고민의 부재’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미워하게 되는 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보거든요.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사람이 처한 상황은 뭘까,’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서 고민하지 않고, 감정적인 영역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기 때문에 혐오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불통의 시대와 혐오의 시대는 일맥상통해요. 그래서 저는 말이 안 통하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여쭤봐요. 저 사람의 생각의 저변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죠. 그래야 맞춰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의 맥락을 이해하려고 하는 거죠.

 

문학 수업에서 학우들과 소통하면서 이러한 대화의 기술에 대해 많이 배워요. 산술적인 수치로 틀린 것이 아니라면, 대화와 소통에 있어서는 완전한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문학 수업에서 어떤 얼토당토않은 해석을 말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똑같이 1/N의 비중을 가지는 의견이 되듯이요. 주변 친구들에게 책을 많이 빌려주는 편인데, 책을 빌려주고 나서 이 책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거든요. 제가 제대로 읽지도 않고 넘어간 부분이 정말 좋았다고 얘기한다거나,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제일 좋았다고 생각한다거나… 정말 의견들이 다양해요. 그런 의견들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해 나가는 거죠. 각자의 이유와 상황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렇기에 당연히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귀를 막고, 남의 눈을 보지 않고, 앞만 보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럼에도 신경 쓰고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세심함이 뭔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제 여력이 되는 한에서 그 세심함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인문학은 시대에서 분명히 평가절하를 받고 있습니다. ‘값싼’, ‘상업성 인문학’이 판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이 시대, 인문학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히 인문학이 평가절하받는 시대죠. 공대 등의 기술적인 과가 치켜세워지고, ‘문과 개그’ 등이 보여주는 인문학 전공 내의 자조적인 분위기라든지... 하지만 인식이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나가야 해요.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바탕이고, 인간다움의 바탕이니까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을까요? 더욱이 인문학이란 어떤 분야에서든 저변에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해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실용성 또한 있죠. 예를 들어 제가 꿈꾸는 콘텐츠 개발에 있어서도, 사용자를 최대한 고려하는 스토리텔링과 공감의 힘이 없으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힘들 거예요. 물론 개발과 이러한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해낼 수 있을지는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고민이겠지만, 우리가 못 보고 지나가게 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시각은 인문학이 가장 잘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깊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또 오히려 기술의 시대일수록 인문학은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간 뇌 지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완성이 돼서 인간의 뇌를 모사할 수 있는 날이 제 생각엔 멀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컴퓨터의 집적도에 인간 뇌 수준의 정보가 들어가게 되는 건데, 그 정도가 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사고라는 걸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봐요. 나 스스로도 내 감정들의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때때로는 내가 믿고 있던 감정의 이유가 틀렸음을 어느 순간 알게 되기도 하잖아요. 이를테면 자기보호적인 거짓말을 하는 경우요. 사람의 사고에 대한 완전한 설명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은 언제든 존재해야 하는 거고, 시대가 바뀔수록 더 면밀하게 따라가야 하는 거죠. 1000년과 1400년의 삶은 그리 다르지는 않겠으나 1950년과 2050년의 삶을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엄청나겠죠. 도덕 규준과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방식은 더욱 신속하게 바뀌니까, 그에 맞는 윤리와 인문학은 오히려 더 필요해지는 거예요.

 

우리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구역들을 개척하고 있는데, 이런 영역들을 설명해줄 인문학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죠.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게 되고, 혼란은 더 커지는 거예요. 새로운 영역에서도 공감과 인간다움을 유지시켜 주는 게 필요하죠. 인문학이 위치를 유지하려면 이런 시대적 공감의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쁜 삶 속에서 인문학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문학을 잊지 않고, 일상의 삶 속에서도 인문학을 공부하며 살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저는 일상 속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국문학을 배우는 우리는 조금 더 기술적으로 그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거겠죠. 책을 무섭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버렸으면 해요. 두꺼운 책이어도 덜덜 떨지 말고… (웃음) 생각보다 재미있으니까요. 쉬운 것부터 주변 추천을 받아가면서, 지평을 점점 확장해 나간다면 마인드맵처럼 독서의 폭이 넓어질 거예요. 뮤지컬이나 영화는 취미라고 여기는데, 독서만은 취미가 아니라 공부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이 재밌다고 했을 때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반응들을 많이 접하는데, 영화를 의무감에 보지는 않잖아요. 같은 건데 말이죠.

  

통학하면서, 혹은 짬이 날 때 책을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국 습관의 문제인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잡게 되는 게 책이거든요. 팁이라고 하면… 그 습관이 잘 안 배일 때, 문학, 비문학 이렇게 두 세 개의 다른 분야의 책을 함께 읽으면 굉장히 도움이 돼요. 하나를 읽다가 피로도가 절정에 다다를 때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거죠. 문학의 스토리를 읽다가 비문학적인 지식을 접하면 굉장히 쿨하게 느껴지고, 또 반대로 비문학을 읽다가 문학을 읽으면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지거든요. 이건 그냥 제 의견이지만, 어쨌든 많이 읽으려고 하고 많이 배우려고 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을 최대한으로 공부하고, 최대한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에요.



▲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행복해 보였던 그


                 

# 서강이란 열쇠로 인문학의 문을 열다

그에게 서강이란, 마음껏 인문학을 탐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창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에게 여전히 서강은 가장 인문학적인 공간이었고,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강에서 그는 인문학을 접할 수 있었을까?


서강대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수업이나 가르침이 있을까요? 기억에 남으시는 강의가 있으신가요?


서강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책과 인문학을 좋아하는 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서강은 제게 인문학의 길을 열어주고 알게 해 준 고마운 곳이에요. 복수전공이 쉬운 제도도 그렇고 타과의 다양한 교양에 대해 열려 있는 것도 그렇고... 학문적으로 열려 있는 학교인 것 같아요. 자유롭게 수준 높고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타 학교는 진입장벽도 높고, 심지어 캠퍼스가 나눠져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서강이어서 좋은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대학 새내기 때는 정말 책과 함께 행복했어요. 교수님이 잠깐이라도 교양 수업에 언급하시는 책들이면 무조건 다 찾아 읽곤 했거든요.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었죠.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2016년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텍스트 수업인데요, 교수님께서 ‘해설을 읽지 마라’ 고 하시더라고요. 기존 해설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소감과 해석을 존중하고 이해하라는 뜻이셨죠.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라는 태도에 먼저 놀랐고, 학생 각자의 해석을 존중해주시는 모습에도 좋은 인상을 받았고요. 김경수 교수님은 날카로운 독법을 가지고 계셔서, 책을 뭉뚱그려 읽는 제게는 참 인상 깊은 교수님이세요. 새로운 독법과 해석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 수업을 듣고 나서 입대를 했는데, 군 복무 당시 책을 1년에 100권씩 읽었거든요. 그 독법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래도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도 완전히 얻지는 못했어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어느 경지에 도달하기는 참 힘든 것 같다는 것을 느껴요. 그래도 조금씩은 가까워가고 있는 느낌이 들죠.

 


서강 덕분에 인문학에 심취하실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혹시 서강이 더욱 인문학적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나 고민해야 할 방향성이 있을까요?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장으로써의 대학의 역할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대학이 취업의 거점이 되고, 인문학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산학협력이 중요해지고...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학은 이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지식을 배우려고 오는 곳이니까 유지해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죠.

 

저는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평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일시적인 취업의 문제를 넘어서, 일생을 결정하는 교육의 공간이니까요. 자신이 기회가 되어 대학에 와서 어떤 전공을 배운다면 평생 간직할 수 있는 배움들을 얻는 건데, 근시안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국문과 나와서 책 쓸 수 있어? 이런 근시안적인 시각들을 많이 접하는데, 단순히 이런 문제가 아니니까 멀리 보고 삶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바꾸고... 이렇게 바뀌어 나가기를 기대해야죠.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 이건희 학생의 서재: 인문학에 입문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추천해요      

누구나 인문학을 했으면 한다는 그.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 자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가지게 된 바람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인문학에 몰두하고자 결심한 학우가 있다면, 가장 먼저 추천해 주고 싶다는 책을 소개받았다!
       

   

               

 

그는, ‘경청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의 말과, 고민들, 생각에 대해, 그리고 누군가의 묻힌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사회. 이러한 세심한 노력들의 군집이 사실 인문학이다. 외면할 수도 있는 사회의 이면을 직시하고, 이러한 폭력이 왜 생겼는지를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학이란, 공동체가 겪는 상처를 품으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인문학을 하는 삶을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다소 어렵고 힘들더라도, 적어도 이해의 노력을 포기하지는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그런 인문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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