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의 스티브 잡스, 김학민(전자 14) 학생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19.03.11 11:17:10
조회 2,928


      


       




▲ 핸드폰 수리 전문 업체 '서강 잡스' 대표 김학민(전자 14) 학생


김학민 학생의 수리 인생은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때부터였다. 기계가 너무 좋아 또래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전자 기기를 분해하고 조립했던 김학민 학생. 죽음의 문턱을 넘어 남한으로 탈북을 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한 꿈을 품고 있었다. 주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기계 수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김학민 학생. 이제 연 매출 약 5억 원의 핸드폰 수리 전문 기업 ‘서강잡스’의 대표님이 되었는데 오늘날의 ‘서강잡스’를 만든 그의 인생을 서강가젯이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전자공학과 14학번 김학민입니다. 현재는 주식회사 서강잡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걸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기계와 많이 친하셨나 봐요.


8살이었을 거에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어요. 방과 후에 다른 친구들은 밖에 놀러 나가는데 저는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던져놓고 밤새도록 전자 제품을 뜯어서 분해하고 조립했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는 이웃들의 전자 제품을 고쳐주는 일로 생업을 이어갔어요.



북한에서 온 새터민이신데,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 방황도 많이 하셨나요?


제가 25살까지 북한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정말 한국이 꿈같았어요. 일종의 희망이었죠. 남한에 대한 기대를 하고 탈북을 했는데 막상 제가 한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구직도 쉽지 않고 탈북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고, 말투 때문에 조선족으로 오해받기도 했어요. 한마디로 사람들과 섞이기가 어려웠죠. 문화 차이도 있지만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공부한 것도 없고, 사람 경험도 없으니 또래들을 만나도 공감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우울증에 걸려서 1년 정도를 방황했던 거 같아요.



남한에 오면 좋은 일만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좌절이 심하셨겠어요.


네, 그래도 1년 정도 방황하니까 문득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2년 정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어요.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도 학업을 따라가긴 힘들었습니다. 동기들은 초중고등학교의 단계를 밟으며 대학에 왔는데 저는 그런 단계별 학습을 한 게 아니니까 학습 능력에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동기들을 따라가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기들이 옆에서 자주 도와줬고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동기들에게 고마웠던 기억이 많네요.



여러 방황 끝에 입학하게 된 서강대학교인데 서강대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끼셨나요?


음, 학교는 제가 과거에 잃어버렸던 생활을 다시 찾아준 고마운 곳이에요. 특히나 인문학 강의들은 제가 겪었던 북한에서의 삶을 치유하는 학문이었어요. 서강에서 배웠던 수업은 인간의 삶을 심오하게 들여다보며 제가 떠올리기 싫었던 북한에서의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했죠. 북한에서, 그리고 탈북을 강행하면서, 자주 죽음과 가까워졌는데 그 ‘죽음’에 대해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던 좋은 기회였어요.

 

아, 그리고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공감대를 가졌는지 알 수 있던 장이었어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벨라르미노 학사에서 지금의 사업을 구상한 게 제 서강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처음에는 한 학생이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이제는 주식회사 될 정도로 성장했어요. '서강잡스'는 어떤 계기로 창업하게 되셨나요?


2015년 당시 2학년이었는데, 제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핸드폰 액정이 깨졌는데 핸드폰 수리비가 비싸서 수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인터넷 사이트에 같은 기종이지만 내부가 고장 난 중고 핸드폰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걸 구입해서 두 핸드폰을 직접 분해해서 결합했죠. 아시다시피 제 취미가 기계를 뜯고 분해하고 조립하는 거니까, 제겐 꽤 간단한 일이었어요. 그걸 지켜본 기숙사 룸메이트 친구가 “형,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서강대에서 형밖에 없을 거예요.”라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핸드폰 수리를 해보라 제안했죠. 처음엔 '누가 나한테 핸드폰 수리를 맡겨'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저한테 핸드폰 수리를 맡긴 몇몇 친구들의 SNS 홍보가 소위 '대박'이 났어요. 익명 게시판에 계속 홍보물이 올라왔죠. '서강대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서요. (웃음)


그 이후로 기숙사 로비, 근처 편의점 등에서 수리를 해주다가 계속 그렇게 하는 건 무리가 있어서 사업장을 열었죠. 처음에는 기숙사 바로 옆에 정말 작은 집을 구해서 사무실 겸 거주지로 사용했고 지금의 사무실은 2018년에 개업했습니다.



'서강잡스'가 여기까지 성장하는데 서강대학교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어요.


사업이 성공하는 데에는 100%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홍보에 있어서 '서강'이 주는 브랜드의 힘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커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서강대학교의 새터민 학생이 시작했다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되는 거죠. 만약 제가 동네에서 시작했다면 성공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을 거예요.



'서강잡스'의 연 매출은 약 5억원, 타 대학교에 2호점 입점 그리고 각종 행사 초청과 스마트폰 수리 교육 강좌 개설 등 핸드폰 수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서강잡스'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서강인들이 그동안 많이 찾아주었기에, 서강인들을 대상으로 해오던 사업이 이제 입소문을 통해서 주변 대학에 까지 진출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회사를 사랑해주시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젠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잖아요? 앞으로는 '수리업계의 대표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제 꿈이 될 것 같아요. 수리 업계의 그야말로 '성지'를 만드는 거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전국 대학교와 서울 주요 상권에 우리 지점을 내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나아가 글로벌 지점으로 확대하는 것이 꿈입니다. 실제로 언론이나 미디어 등에 노출이 되다 보니 해외에서 연락을 많이 주세요. 전액 투자를 지원할 테니 해외에 입점하자고 말이죠.

 

그리고 좀 더 큰 목표를 말씀드리면, 제가 북한에서 왔잖아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통일이 되어서 북한 평야에 '인민잡스'를 내는 것도 저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웃음) 평양에는 ‘인민잡스’를, 나머지 전 한반도에 걸쳐 ‘서강잡스’를 내는 거죠.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현재 사업의 성장 속도와 저희 회사의 북한 이해 정도로 보았을 때 그렇게 무리도 아니에요. 물론 그 전에 통일이 되어야겠지만요. (웃음)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학민(전자 14) 학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제2의 김학민을 꿈꾸는 서강인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제가 20대 후반에 학교를 왔다고 했잖아요? 그 나이에 공부가 정말 필요해서 학교에 왔지만, 저와 같이 입학한 20대 초반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을 뿐이었어요. 도전의 마인드를 가진 친구들은 보기 어려웠죠.

 

그래서 전 꿈을 꾸기 위한 존재, 어떤 사람이 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내 꿈이 아닌 다른 꿈을 꾸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요. 그러면 자신이 정해놓은 목표 이외에 더 많은 것을 보고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에게 서강이란?


저에게 서강은 '노스텔지어'입니다. 저는 인생을 두 번 산 것 같아요. 북한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삶, 그리고 한국에서의 제2의 인생. 서강은 한국에서의 인생을 선물해 준 추억 속의 노스텔지어 같은 것입니다.

       




▲ 주식회사 '서강 잡스'와 김학민 대표의 행보를 응원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한 김학민 학생. 기계 수리를 향한 그의 사랑과 관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되고 있다. 오로지 그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만든 ‘서강잡스’의 가치는 현재도 고공행진 중인데, 그 열정의 땀방울로 만든 성공이 언젠가 그의 고향인 북한에도 닿길 서강가젯이 응원을 보낸다.

 









첨부파일
285x200.jpg 다운로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