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적 시각으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다. SF소설가 심너울 동문 (심리12)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0.06.15 15:49:35
조회 2,977



      

 과학 기술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축복일 수만은 없다. 실업, 환경 오염, 생명 윤리, 심지어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까지, 과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SF 소설가 심너울 동문(심리 12)은 이에 주목하여 새로운 세계를 펼쳐낸다.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그리고 장편 《소멸사회》까지. 그의 소설 속 세계는 비일상적이고 생경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현실에 대한 통찰이 존재한다. 균열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작가, 심너울 동문을 서강가젯이 만나보았다.



▲ 심너울 동문 (심리 12)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문학과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의 통섭      



 

 심너울 동문은 상당히 인상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2018년 여름 단편 <정적>으로 데뷔했다. 심리학, 컴퓨터공학, 그리고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살아온 지난날에 관해 물었다.




안녕하세요. 동문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F 소설가 심너울입니다. 저는 2018년 6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공간교류사업 ‘같이, 가치’의 일환으로 탈 영역 우정국에서 개최한 텍스트 공모전에 소설 <정적>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마켓 토리코믹스 상과 2019 한국 SF 어 워드 대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장편 《소멸사회》,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와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를 단독 저서로 출판하였습니다.


심리학과 학부생, 프로그래머를 거쳐 2018년 단편 ‘정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작가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텍스트를 좋아하긴 했지만, 저는 철저한 문화의 소비자였고요. 가끔 콩트를 쓰기는 했는데, 그건 정말 순전히 취미 활동이었고 그걸 영리적으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죠. 그런데 2018년 5월에 출판된 곽재식 작가님의 작법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읽고 뭔가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침 친구가 서교예술실험센터와 관련된 공모전을 알려준 겁니다. 그래서 써 봤는데 웬걸, 당선도 되고 공연화도 된 거 아닙니까. 제가 당시에 지병인 우울증이 극한에 다다라 상당히 불행하던 때인데, 덕분에 잠시나마 행복했고요. 그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보자 한 게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경험들이 지금의 소설가 심너울을 만든 것이겠군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우울증이 대단히 심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앓았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되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 자신에게 나쁜 일도 많이 했고요. 심리학을 전공한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데 마음에 대해 배우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에 대해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음…. 심리학 전공을 한 덕분에 여러 심리치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에 대한 유의미한 성찰을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방황하다가, 졸업 이후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서 웹앱 외주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되고 보니 그게 다 쓸모 있는 경험이더라고요. 전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니까, 그 지식을 녹여 썼던 본격 컴퓨터공학 SF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우울증 때문에 했던 수많은 실패들은 이제 경험이 되어 제가 마음이 언제 약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걸 헤쳐나갈 수 있을지 알려줍니다. 전부 참으로 다행인 일입니다.


작가 소개란에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젊은이로서, 작가님도 어떠한 경계에 걸쳐 있다고 느끼시나요. 만일 그렇다면 어떤 경계에서 어떻게 분투하고 계시나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유지했던 수많은 믿음이 깨지고, 현실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굳이 COVID19 이야기를 할 것도 없습니다. 인공지능에 의한 전통적인 직업군의 붕괴는 이제 더 이상 SF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건조하고 담백한 사실 진술이 되었으며,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될 거라는 희망찬 예언에 정확히 반대되는 정보의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화하여 가짜 뉴스와 대안 사실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현대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이런 환상적인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모두 정상 세계의 경계 위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굳이 저로 한정할 것도 없겠네요.



▲ 심너울 동문의 저서《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소멸사회》


 # SF 판타지와 함께      



 

 심너울 동문은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이며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이다. 대개 SF 판타지 장르는 비현실적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심너울 작가의 환상은 오히려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가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 SF에 대해 물었다.




작가님의 소설 세계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작품 하나로 구체적인 예시를 드는 게 좋겠네요. 최근에 출판한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한 터럭만이라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때는 현대로부터 20~30년 정도 지난 근미래, 배양육 기술이 원숙했습니다. 사람들은 배양육 기술로 이제 윤리적으로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 배양육으로 시장이 급격하게 전이하다 보니 본래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을 받고 집회를 벌입니다. 실업률이 급증하죠. 게다가 배양육의 씨앗이 될 체세포 제공자인 동물들이 합당한 의사 표시 능력이 있지 않으므로 체세포 수집 자체도 학대가 된다는 의견도 힘을 얻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들이 “그럼 사람 고기를 복제해 먹자! 사람은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고 목축업의 대상도 아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또 먹힙니다. 자,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쓰는 소설은 대부분 이런 내용입니다. 현실에 분명한 비일상을 주입하고 현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름대로 가정하여 작성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배양육 기술의 원숙’이 그 비일상이 되겠지요.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에 실린 작품을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평범한 공간에서, 비범한 상황에 맞닥뜨리곤 합니다. 일상을 SF로 바꾸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마감이 생깁니다. 고뇌를 합니다. 과학사와 STS(과학기술사회학) 책을 펼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현란하고 어려운 말들 속에 그나마 이해할 수 있고 괜찮은 키워드를 파보면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봅니다. 필요하면 책을 추가로 읽습니다. 과학사는 서강대에서 필수 교양으로 들었는데요, 그게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과학사 정말 재미있는 과목이에요.


SF 판타지 장르가 가진 강점과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SF와 판타지는 분명히 현실을 왜곡하죠. 그런데 현상의 왜곡은 우리의 인지에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광학 현미경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광학 현미경을 통해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의 세상을 실감 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학 현미경은 엄밀히 말하면 빛의 특성을 이용해 상(狀)을 왜곡시키는 것 아니겠어요? 비슷하게, 어떤 왜곡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것이 SF와 판타지의 매력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특히 요즘 한국에서 SF 소설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 장르에서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심너울 아니겠습니까? 농담입니다.
 제 가슴 속에는 박완서 작가님과 보르헤스와 테드 창, 그리고 듀나 작가님을 위한 제단이 있습니다. 저는 SF 작가니까, 듀나 작가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그는 현대 한국 SF의 선구자이며, 천재입니다. 듀나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시기를 강력히 권유합니다. 초기 단편집인 《태평양 횡단 특급》과 《면세구역》은… 글쎄요, 저는 제가 그 위대한 단편집에 나오는 단편들에 버금가는 소설을 평생 하나라도 쓸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물론 최근 작품들도 빠질 것 없이 훌륭합니다. 저는 《아직은 신이 아니야》를 수십 번은 더 읽었습니다. 그 밖에도 김초엽 작가님, 정세랑 작가님, 문목하 작가님…. 현대 한국 SF 붐과 한국 SF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그리고      


 

 심너울 동문의 두 번째 소설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가 2020년 6월 출판되었다. 단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오디오 드라마로, 콘텐츠 플랫폼 리디북스에서는 만화로 각색되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심너울의 상상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다. 그가 펼쳐낸, 그리고 앞으로 펼쳐갈 텍스트들이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전통적인 SF 토픽에서 지금 이 사회의 민낯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표제작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시대는 2080년대입니다. ‘나’는 밀레니얼이예요. 이제 노인이 되었죠. 그는 인터넷과 함께 태어나 인터넷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세대였지만 이제 근처의 너무 많은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2080년대의 젊은이들은 밀레니얼에게는 너무 기이하게 느껴지는 인터페이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요. 기대 수명이 120년인 시대인데, 나는 나름대로 젊게 살아보고 싶어서 애를 써 봐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될까요? 정말 자신이 젊을 때 익숙했던 방식과 판이하게 다른 기술문명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이야기들이 수록된 책입니다. 정말로 재미있어요. 1만 4천원이면 4시간을 대단히 행복하게 보낼 수 있죠. 한 시간에 3500원꼴로 이만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글쎄요, 제 핍진한 지성으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네요.


소설 이외에도 도전하거나 활용하고 싶은, 혹은 작품이 재해석되었으면 하는 미디어가 있으신가요?


  저는 제 소설의 영화화와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큰 관심이 있습니다. 영화는 제가 선호하는 중단편 스타일과 잘 맞거든요. 영화는 2~3시간 이내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편 소설은 영화화되기가 쉽지 않죠. 영화화됐다가 많은 부분이 깎여 나가서 원작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중단편 소설을 영화화할 땐 그 핵심 아이디어에 살을 조금 덧붙이고 시각적인 연출을 추가하면 돼서, 본 내용이 줄어드는 경우가 드물죠. 영화가 된 제 소설을 꼭 보고 싶네요.
 게임 시나리오는 제가 게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 꼭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현대에 새로 탄생한 예술이죠. 이전의 매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게임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만큼 힘이 있고 새로운 매체에 제 이야기를 녹이는 방법을 궁리해보고 싶네요. 사실 판권료 많이 준다면 뭐든 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픽스업 소설(비슷한 흐름을 공유하는 단편을 모아 하나의 새로운 소설로 선보이는 것)을 쓰고 있습니다. 먼 미래,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했고, 어떤 이상적인 사람들은 문명을 유지하려는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 ‘별누리’라는 우주선을 쏘아 보냅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새 세계를 찾아 떠나다가 그들의 조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별누리 사회는 좀 기괴한 길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행성에 내려앉을 필요 없이 별누리에 살아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육체의 삶을 포기하고 다들 컴퓨터 안에 들어가야 한다네요? 와, 이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걸 다 수습하면 그때 책이 나오겠죠.



 # 현실 속에 붙박인 그대에게      



 현실만한 판타지가 없는 요즘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일상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장면 같다.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강 가족들에게 심너울 동문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에게 엄혹한 시기입니다만, 희망의 꽃이 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믿음에서 발한다고 생각해요. 신앙 말고, 그냥 언젠가는 더 좋은 일이 있으리란 믿음이요. 좋았던 시절보다 더 좋을 때가 있을 거라고 믿고 앞으로 꿋꿋이 걸어가는 의지. 그것은 일종의 자기 실현적 예언으로 작용하여 정말로 더 좋은 일을 불러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심너울의 세상은 신선하고 기발하다. 그러나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묘하게 익숙하다. 그의 인물들은 첨단 공학 연구실에서 퇴근을 부르짖는가 하면, 피로에 찌든 채 올라탄 지하철에서 영혼을 보기도 한다. 이 기묘한 병치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비일상적 세계의 일상’ 속에서 독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우주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지구가 푸른 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까마득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지금 여기의 현실. 이 역설이 SF의, 심너울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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