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역사가 되다 … 성한용 동문, 한겨레 선임 기자
작성자 서강뉴스Weekly
작성일 2018.09.03 16:28:05
조회 2,405

한국 언론의 역사가 되다

성한용 동문, 한겨레 선임 기자


▲ 공덕동 한겨레 사옥 로비에 서있는 성한용 동문(정외 77)


1988년 한겨레 창단멤버에서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다시 선임 기자로 현장에서 글 쓰는 성 동문
서강과는 총동문회, 서강언론동문회 임원으로 인연을 이어나가



 서강대학교 77학번으로 입학하셔서 총동문회 부회장, 서강언론동문회(이하 ‘서언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단순히 모교를 넘어서 ‘서강대학교’가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서강은 동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77년은 데모가 팽배했고 학생들이 잡혀가거나 학교에 경찰이 상주하는 게 아무렇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때 학교를 다니기 싫은 마음에 군입대를 했었지요. 군대 간 사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81년 2학기에 복학을 했어요. 따지고 보면 77년부터 84년까지 학교에 있었는데, 그 시기 서강대는 정원도 적고 매우 소수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FA제도를 둬서 출결도 열심히 따졌고 공부도 매우 엄격하게 시켰었습니다. 교수들의 수준도 다른 학교에 비해 매우 우수했고요. ‘작지만 알찬 학교’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집단으로 뭉치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개개인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지금도 ‘서강’하면 ‘내실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닐 당시에도 독후감을 쓰는 과목이 있었는데, 그런 훈련들이 지금의 저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낸 사람들은 틀에 박힌 글을 쓰기 쉽거든요. 그래서인지 실제로 서강대 출신 후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글을 잘 쓰는 경우가 많아요.



 동문께서는 서울신문을 거쳐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입사한 이후, 33여년의 시간을 ‘기자’로 살고 계십니다. 지금껏 기자로 살아가게 만든 기자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일단, 돈을 많이 벌려면 기자를 하면 안됩니다. 기자는 돈 하고는 인연이 멀지요. 기자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이 세상, 작게는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잘못된 것, 부패한 시스템을 바로잡고, 역사의 중요한 현장을 기록하고, 기득권을 감시·비판하는 등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담당할 때 오는 보람 같은 것이겠네요. 기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꾼다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농담 삼아 종종해요. 일종의 자부심과 직업의식이 담긴 말이지요. 기자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세상을 괜찮은 방향으로 바꿔간다는 보람 같은 게 있어요. 결국 남는게 더 많은 직업입니다.



 언론계에 촌지가 ‘문화’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1991년 당시 보건사회부(이하 ‘보사부’) 출입기자들이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기업으로부터 촌지를 요구해 받았던 일, 일명 ‘보건사회부 촌지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셨지요. 당시에는 그게 ‘관행’이고 ‘불문율’로 통하던 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알릴 수 있던 힘은 어디서 나오셨나요?


 당시에는 언론이 부패의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겨레는 1988년에 ‘윤리강령’을 제정했어요. 그러던 중 당시 보사부 기자들끼리 촌지로 여행을 가고, 협회에서 돈을 받아 나눠 가지는 일이 있었어요. 저는 여행도 안 갔는데 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기자들 내 논쟁이 생기자 일종의 심판 역할로 저를 부른 것이지요. 가서 듣고 보니 어디서 얼마를 받고, 얼마를 나눠가지고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걸 메모해서 기사로 만들어질 수 있게 여론 매체부 기자에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신문이 1면에 사과를 싣고, 해당 기자들이 해고되고, 촌지 문화가 사라지는 계기가 됐지요.


▲ 당시 ‘보사부 촌지사건’을 보도한 기사(출처: 한겨레 아카이브)


 저는 우연히 목격한 사람이고, 사건을 덮지 않고 한겨레를 통해 알려지도록 한 것뿐입니다. 사실 그 일을 통해 동료 기자들이 중징계를 받고 해고당하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많았어요. 결국 사회부를 떠나 내근으로 옮겨 가겠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고 내 선에서 덮어두는 것은 한겨레 기자로서 자격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옳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 양심이 사건을 알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 덩굴이 아름다운 한겨레 사옥 앞에 있는 성한용 동문



 성한용이라는 이름 뒤에는 ‘선임 기자’라는 호칭이 따라붙습니다. 선임기자라는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예우나 명분으로만 남기도 하는데, 성 동문은 기사로, 강연으로, 토론 패널로 여전히 한국 사회를 통찰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동문에게 ‘현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선임 기자를 하게 된 건 2005년 3월이었습니다. 직전에 사회부장 1년, 정치부장 2년을 했었는데 다시 현장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당시 10명의 기자들과 함께 2005년 ‘선임 기자’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나갔어요. 그러던 중 2009년부터 2011년 3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편집국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하던 중에 다시 현장 기자로 가겠다고 자원했지요. 그 이후 지금까지 총 11년 정도 선임 기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선임 기자’라는 자리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간부보다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일하는 것이 좋았어요. 그게 논설위원이나 간부가 아닌, 현장 기자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누군가 제게 현장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와 회사에서 중직을 맡는 간부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간부라고 대답할 겁니다. 신문사에서 경영이나 관리 차원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다시 현장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는 것이지요. “시니어 기자는 이래야 한다, 어떤 선택이 옳고 어떤 선택이 그르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저처럼 현장에 나가 적응할 수 있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다면 나가는 것이 좋지요. 벌써 내년 11월이 정년퇴직입니다. 여전히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글을 쓰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30~40년간 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자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이 우리 삶에 밀접하게 자리잡으면서 언론계도 ‘Digital First’를 지나 ‘Digital Only’의 시대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 동문도 현재 한겨레 TV에서 ‘한겨레 the 정치’라는 이름으로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시지요. 더 이상 지면신문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론인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앞으로 어떤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신문 기자인데 지금은 ‘신문’기자라고 볼 수는 없지요. ‘신문’에서 제가하는 일은 3주에 한번 칼럼을 쓰거나 큰 기획기사를 다루는 일뿐입니다. 지금 저는 인터넷 TV에서 정치인들 인터뷰를 진행하고, 인터넷으로 일주일에 한 개 내지 두 개의 정치 에세이를 작성합니다. 그렇다고 언론인이 아닌 것은 아니에요. ‘기자’라는 정체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기사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수많은 미디어가 생겨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사의 통로보다는 콘텐츠와 정체성, 신뢰성들이 더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논리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기자가 되고 싶으면, 논리적인 체계를 거쳐 글 쓰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해요. 큰 회사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 자신만의 경력을 쌓고 이후에 경력 기자로 입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단 어느 자리든 뜻을 가지고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내가 유능한 언론인임을 입증하고 점차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분야는 재능보다는 훈련과 연습이 훨씬 중요합니다.

▲ ’한겨레 the 정치’ 프로그램에서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을인터뷰하고
있는 성한용 동문



 하루에도 수백 개의 언론사가 셀 수 없이 많은 기사들을 생산합니다. 뉴스 콘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인데 성 동문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어떤 기사를 쓰고 싶으신지요?


 말씀하셨듯, 뉴스가 넘쳐나다 보니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뉴스만 믿는 상황이 됐지요. ‘인지부조화’나 ‘확증 편향’도 종종 일어납니다. 언론이 신뢰를 잃어간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사회적 사안의 내용에 동의를 해야 토론이 생기고, 방안을 마련하는데, 지금은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도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인 것이지요. 이른바 진보나 보수 할 것 없이 신뢰를 잃어가는 우려 스런 상황입니다. 좋은 기사는 ‘믿을 수 있는 기사’, ‘신뢰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생각은 다르지만 거짓말은 아니야. 저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어”라는 말을 듣는 게 중요하지요. 존중까지는 아니어도 인정은 받을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어도 이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 기사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기자는 모든 사람들이 ‘이게 맞다’고 할 때에도 ‘혹시 아닐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다른 면, 다른 부분을 고민하는 사람이 돼야 해요. 그렇게 함으로써, 기자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함과 동시에 책상에 펜과 수첩을 꺼내는 성 동문을 보면서 30여년을 기자로 살아가는 사람의 성실함과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분명 쉽지 않다. 때로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야기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도 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바꿔가는 성 동문과 같은 기자들이 있는 한, 많은 후배들이 언론인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    | 김도연 (학생기자, 커뮤 17) ehdusdl@sogang.ac.kr

 사진 | 김도연 (학생기자, 커뮤 17) ehdusdl@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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