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의 역사가 깃든 공간들 본관, 로욜라도서관 그리고 삼민광장
작성자 서강가젯(Sogang gazette)
작성일 2020.05.18 15:45:28
조회 2,842



      

 지난 4월 18일은 서강대학교의 60번째 ‘개교기념일’이었다. 우리 학교는 빠르게 발전했고, 바르게 변화해왔다. 1960년, 6개 학과, 158명의 신입생이 본관 한 곳에서 수업을 듣던 때를 지나, 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캠퍼스를 빼곡히 채우는 20여 개의 건물에서 수업을 듣게 된 지금까지 딱 60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어떤 곳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어떤 곳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고, 또 어떤 곳은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였다. 지금부터 서강의 역사가 깃든 공간들을 소개한다.



 # 캠퍼스의 터줏대감, 본관      



▲ 현재의 본관 모습

 

 정문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오르막길의 끝에는, 언제나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본관이 있다. 현재는 본관 내에 강의실이 존재하지 않아서, 학생들의 발길이 뜸하게 되었지만, 1960년 4월 개교 당시에 우리 학교의 건물은 본관이 유일했다. 개교 첫해 개설된 10여 개의 강의 또한 본관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본관의 1층에는 교학처와 재무처, 성당, 학장실, 교수 연구실 등이 있었고, 2층에는 도서관, 3층은 12개의 강의실이 들어서 있었고, 4층에는 강당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1960년대의 본관은 현재 캠퍼스 내의 모든 건물의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행정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물이지만, 그 때의 본관은 학생들에게 열띤 학업의 공간으로써, 혼자서도 그 역할을 든든히 해냈다.



▲ 1960년대 본관 모습,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굴뚝을 볼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본관의 용도는 여러 번 변했을지 몰라도, 외관은 아직 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특색 있게 느껴지는 본관 건물은, 근대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故 김중업 건축가의 초기 대표작품 중 하나이다. 서구적 건축 양식에 동양적인 미까지 녹여내어, ‘학교 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건축 ‘작품’으로써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2017년부터는,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에서 지정하는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다. 원래는 본관 옆에 큰 굴뚝이 있었는데, 1994년 11월에 이것이 철거되면서 많은 학생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현대식 건물이었던 만큼, 내부 시설도 최신 고급 시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59년에 지어진 본관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1958년에 수세식 변기를 설치한 아파트가 처음으로 지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학 건물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해 볼 수 있다. 또, 그 시대에 호텔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두루마리 휴지를 칸마다 비치해 두어 학생들이 집에 챙겨 가기도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그 외에도 강의실, 연구실에 난방 장치를 충분히 갖춰 놓는 등 이를 통해 재단이 학생들에게 우수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이런 시설들을 갖춘 대학은 서강대학교가 최초였으며 유일하였다.



 # 지식의 상아탑, 로욜라 도서관    

  


▲ 1973년 도서관이 완공되었을 때의 모습

 

 도서관은 대학의 상징적 건물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우리 대학의 도서관은 원래 본관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증과 구매로 인해 보유 장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더 이상 본관 2층에서만 모두 수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2층과 3층에 분산하여 놓기도 하였으나, 도서관 이용자들의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후에 R관을 지어 도서관을 이전하였지만,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불어나는 책들을 전부 감당하지 못하여 몇백 개의 책들은 아예 서가에 나열하지도 못한 채, 창고에 쌓여 있기도 하였다. 열람실 좌석 또한 부족하여 시험 기간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야 겨우 자리를 잡아 앉을 수 있었다. 이에 도서관 건립계획을 실행하여 1973년 12월, 예수회 설립자인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이름을 붙인 ‘로욜라 도서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처음 건물을 설계할 때, 도서관은 연구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캠퍼스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어느 건물에서나 그리 멀지 않게 위치하고 있어, 도서관은 학문 통합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개관 당시 한국 대학에선 처음으로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도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완전 개가식 체제로 운영하면서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로욜라 도서관 1관의 규모는 1500평으로, 35만 권이 수용 가능했고 630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등 본관과 R관에 있었을 때 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커졌고 그에 따른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 로욜라 도서관 3관의 '만레사 존'

 

 1982년부터는 학교의 입학정원이 두 배로 증가하였다. 우리 학교는 예체능 계열이 없고 순수 학부로만 구성되어 있어 도서관 이용률이 매우 높았는데, 입학정원의 증가는 그대로 도서관 이용자 수의 증가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 증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1981년부터 약 1년간 2관을 증축하였고, 1관과는 연결통로를 만들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2관은 1440평 규모에, 15만 권이 소장 가능한 서고와 1000석의 열람석을 갖추었다. 2관을 증축함으로써 열람석과 재학생의 비율이 1:5.6에서 1:2.5로 크게 감소하면서 학업 환경이 훨씬 더 쾌적해졌다. 1997년에는 또 한 번의 증축을 통해 5층짜리 1130평의 3관을 완공하며 지금의 로욜라 도서관이 되었다. 현재 우리 학교 도서관은 사립대 기준 학생 1인당 장서 수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그 명성이 드높다.



 # 학생 운동의 성지, 삼민광장      



▲ (좌) 삼민광장에 앉아 있는 학생들, (우) 삼민광장 자리에 들어선 곤자가 플라자

 

 10학번쯤부터는 생소할 수 있는 삼민광장. 삼민광장은 2008년에 사라지고 없고, 현재 그 자리엔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그 덕에 식당, 카페, 서점 등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늘어났지만, 삼민광장을 기억하고 있는 동문들에게는 어떤 편리함과도 맞바꿀 수 없는 따뜻한 추억과 뜨거운 기억들이 존재한다.


 80년대의 삼민광장은 날이 좋으면 잔디밭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드러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80년대, 서강대학교 학생이었던 커뮤니케이션 학부 신호창 교수는 “규모가 적은 수업의 경우, 학생들이 교수님께 야외수업을 하자고 졸라, 삼민광장에서 원을 만들어 앉아 장기자랑이나 게임을 하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지금의 청년광장이 그렇듯, 당시 삼민광장은 많은 학생에게 따뜻하고 평화로운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곳이 늘 따뜻하고 평화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혹 재학생 중 삼민광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삼민광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삼민광장의 ‘삼민’은 ‘민족’, ‘민중’, ‘민주’를 뜻하며, 학생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80년대 붙여진 비공식적인 명칭이다. 삼민광장은 그 시절 학생 운동의 성지로써 각 학과의 깃발이 나부끼는 집회가 자주 열렸었다. 또, 시위를 할 때 열을 지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는 장소로 삼민광장이 자주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그 곳이 바로 삼민광장이다.


  지난 60년, 졸업하여 학교를 떠난 동문들과 코로나 19로 인해 오랫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한 재학생들에게, 그리울 우리 학교 캠퍼스를 기사로나마 전한다. 현실에서의 걱정은 잠깐 접어두고, 언제나 아름답고 정겨웠던 우리 기억속의 서강을 떠올리며 잠시 즐거운 추억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첨부파일
서강역사공간2_285x200.jpg 다운로드
댓글 (1)
이영호 2020.05.29 09:46
"우리 학교는 예체능 계열이 없고 순수 학부로만 구성되어 있어 도서관 이용률이 매우 높았는데"
도서관 이용률이 매우 높은 원인이 예체능 계열이 없어서 인가요? 예체능 계열도 도서관 이용률이 높답니다.
실제로 로욜라 도서관에는 예술 관련 서적이 타 대학보다 적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타 대학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택배로 받아야 해서요. ^^;